오피니언 과학 칼럼

보노보에게서 배우는 상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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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갈등은 의지를 지닌 두 성격의 대립 현상이며, 인간사회와 함께 존치되었던 사회적 현상이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예부터 여러 가지 제도와 장치가 마련되어 왔다. 가장 고전적인 갈등의 해소법은 칼, 즉 무력이었지만 점차 대화와 타협 그리고 규정과 규범이 더 많이 활용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다양한 갈등이 있다. 보수와 진보, 노동자와 고용주, 북한 정부와 우리 정부, 신세대와 구세대의 갈등 등이 현 시대상을 반영하며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사람만이 사회적 동물이 아니듯이 야생동물의 사회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한정된 먹이·영역·배우자 등을 좀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갈등과 같은 보다 원초적인 것들이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원초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간과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 대형 유인원인 침팬지들의 경우에 비추어 그들의 갈등 해결 양상이 우리 인간사회의 갈등 해결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노릇이다.

침팬지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영장류로서 두 종으로 분류된다. 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일반 침팬지와 보노보 침팬지(일명 피그미 침팬지)가 있다. 태어날 때의 얼굴 색깔(검은색과 핑크색), 입술 색깔(붉은 입술과 갈색 또는 검은색) 등 형태학적인 뚜렷한 특징이 있으며, 서식지·생활습관·사회구조 그리고 갈등의 해결 양상 또한 매우 상이하다.

일반 침팬지 사회에서 생겨난 갈등의 해결 방식은 호전적인 인간들처럼 주로 폭력에 의존한다. 이들도 자신의 강인함을 드러내길 좋아하며 자신의 먹이를 노리는 다른 침팬지는 용서하지 않는다. 또한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소에도 ‘과시행동’이라고 일컫는 행동으로 자신의 강인함을 표출하는데 이때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서열이 낮은 침팬지나 암컷 침팬지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일반 침팬지의 사회는 철저히 서열 위주이지만 서열은 항상 유동적이다. 끊임없는 투쟁과 싸움을 통해 이들의 서열은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의 갈등은 폭력으로 해결되며 폭력을 통해 서열 1위의 권력자가 탄생한다. 즉 일반 침팬지의 사회는 끝없는 권력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갈등을 해결하며 질서를 유지시켜 간다.

보노보 침팬지는 일반 침팬지보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아서 많은 시간을 서로의 털을 고르는 것(신뢰와 친근함의 표시)에 할애하고, 인근의 다른 침팬지 무리와 영역이나 먹이 등을 이유로 좀처럼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보노보 침팬지는 자신들의 갈등을 투쟁, 즉 싸움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물론 전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가끔 싸우더라도 싸움 이후가 판이하게 다르다. 싸움이 끝난 뒤 이들은 인간의 성행위와 유사한 행위를 한다. 수컷끼리 또는 암컷끼리도 비슷한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들은 성적으로 매우 발달한 침팬지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고유한 행동 언어며 그들만의 갈등 해소 방법이다. 즉 이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행동 언어를 통해 싸우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고 양보하며 신뢰를 쌓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 두 침팬지를 보면 마치 인간의 양면을 보는 듯하다. 인간 내면의 호전적인 본성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생각해 보면 잘 알 것이다. 물론 침팬지와는 달리 인간의 호전성은 사회가 만든 강제적 규범과 이성에 근거한 양심으로 제어되고 있다. 그것이 또한 우리가 속한 이웃과 사회 전체를 건전하게 유지시키는 기초질서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기도 하다.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평화와 공존을 위해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보노보의 행동양식에서 상생의 지혜를 배웠으면 한다.

◇약력=경상대 축산학부, 도쿄대 수의학박사, 한국동물번식학회 이사, 건국대 겸임교수

장규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