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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學을 위축시키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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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얼마 전 대통령은 한 언론과의 회견에서 교육개혁의 걸림돌로 교육계 원로, 교육 관료, 사학 운영자 세 집단을 꼽았다. 세 집단이 교육에 직ㆍ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혁의 책임을 전적으로 이들에게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세 집단에 대한 평가가 각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생각을 반영이나 한 듯 교육인적자원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을 보면 사학에 대한 감시 일색이다. 법인 이사회 개편, 사립학교법 개정, 교육부 직제에 사학 관리부서 별도 운영, 감사 때 시민단체 참관 및 외부전문가 투입, 예ㆍ결산 및 감사보고서 상시 공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법적 기구화 등이다.

다 옳은 말들이다. 그렇게 해야만 사학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동안 일부 비리 사학이 사회적 물의를 빚어 온 결과인 셈이다. 비리 사학은 이 나라 대학교육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도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비리 사학을 두둔하거나 감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얼마 안 되는 비리 사학을 척결하기 위해 한꺼번에 많은 규정과 제도로 모든 사학을 위축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립대학 못지않게 바르게 운영하는 사립대학이 아직은 많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사학을 운영하는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다. 우리처럼 사학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가혹한 나라는 드문 것 같다. 소위 선진국에서는 사학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존경심만은 표한다. 이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희사해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인류 사회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대학들은 바로 '사립대학'이다. 미국의 하버드대와 예일대가,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가 그렇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선진국과 같이 사학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근대교육의 역사는 사학에서부터 시작됐고, 대학 교육에서 사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90%에 가깝다. 사학을 위축시키지 말아야 한다. 사학의 사기가 떨어지면 나라의 대학 교육이 위축된다. 사학을 운영하는 사람이 신바람나게 교육사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우선, 정부는 사학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학 운영자를 적대시하지 말고 중요한 동반자로 인식해 질 높은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정책의 방향을 제재를 가하는 쪽보다는 지원하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사회는 사학에 대한 객관적 비판과 함께 따뜻한 시선도 줄 수 있어야 한다. 비리 사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그리고 건전 사학에 대해서는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언론과 사회단체는 그러한 역할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사학 운영자는 정부의 통제와 지시에 이끌리기 이전에 대학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스스로 높여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게 된다. 사학에 대한 사회의 따뜻한 눈길이 요구되는 때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