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국 정부의 입장 변경 아닐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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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관방장관은 3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 정부의 일개 기관이 하는 일로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 변경을 미국 정부의 입장 변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독도 영유권 표기를 일본에 유리하도록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했다가 일주일 만에 다시 ‘한국’과 ‘공해’로 원상회복하면서 영유권 주장에 차질이 생겼지만 여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마치무라 장관은 향후 미국 정부에 항의하거나 표기의 재변경을 요청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런 태도는 BGN이 일주일 전 독도 영유권 표기를 변경한 직후 나온 반응과는 딴판이다.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일으킨 뒤 추가 대응책 마련으로 고심했으나 미국이 지난주 사실상 일본의 편을 들고 나서자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외무성과 문부과학성 내부에서는 “일본 정부 정책과 외교의 승리”라는 자축 평가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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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무라 장관은 지난달 29일 한승수 총리가 독도를 방문했을 때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 차이를 부각시키는 행동은 적절치 않다”며 대놓고 비판했다. 미국이 사실상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이해하고 독도 도발과 관련해 유리한 입장에 서면서 자신감 있게 공세적인 발언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최근 BGN의 조치를 내세워 일본 정부의 주장을 강력하게 대변해 온 일본 언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 정부의 표기 번복으로 그런 주장의 근거를 잃게 됐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인 NHK는 “이번 조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배려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지(時事)통신은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배려하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라고 전했으며 교도(共同)통신은 “미 정부가 궤도를 수정했다”고 분석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부시 대통령이 방한 중 항의시위 등의 사태를 우려해 한국을 배려했을 뿐”이라며 “미국 정부가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아사히(朝日)신문도 부시 대통령이 BGN이 독도 대신 중립적 이름인 ‘리앙쿠르암’을 사용하고 별칭으로 ‘독도’와 ‘다케시마’를 병기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극우 언론인 산케이(産經)신문은 이날 전문가 의견란을 통해 극우 강경파들의 견해를 전달했다. 일본 방위성 직속 방위연구소의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 총괄연구관은 한국의 독도 방어 군사훈련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독도 문제를 가열시킬 경우 한국은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례로 한국의 대외채무가 증가하고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있는 점을 들어 장차 금융위기가 재발할 경우 “일본 측이 긴급 융자를 제공하려 해도 일본 국민이 그렇게 해 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케사다 연구관은 “이명박 정권은 과거 한국 정부가 넘지 않은 선을 넘고 말았다”며 “일본 측도 냉정함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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