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칼럼

MB외교 심기일전의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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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루스벨트 정부의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는 1905년 7월 대통령의 밀령을 받고 도쿄로 가서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와 가쓰라·태프트 비밀조약을 맺었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통치를, 미국은 일본의 조선 통치를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곧이어 영국으로부터도 조선 통치를 인정받았다. 열강의 동의를 등에 업은 일본은 그해 11월 고종을 압박해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조선의 외교적 손발을 묶어놓고 일본이 취한 조치의 하나가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이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논리적으로는 일본의 독도 강탈과 인과관계가 없을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미·일 야합의 연장선상에서 오늘의 독도 문제의 씨가 뿌려진 것이다. 쇠고기 파동을 겪은 직후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다는 절박한 사정 때문이라고는 해도 부시가 전문가들의 결정을 뒤집은 것은 우리의 박수를 받을 만한 정치적 결단이다.

 그러나 부시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은 성취에 안주할 수 없는 것이 독도문제의 본질이다. 독도 표기의 원상회복은 미국 지명위원회가 내린 7월 22일 결정을 뒤집은 것으로 잠시 잃었던 걸 되찾은 것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1977년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리앙쿠르암(Rocks)으로 호칭하기로 한 결정이다. 이걸 바꾸는 것이 문제다. 독도 문제를 다루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나무와 땅속줄기(Rhizome)의 차이 같다. 지상의 나무는 이웃 나무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한정된 범위의 소통만 한다. 그러나 땅속줄기는 모든 나무의 땅속줄기들과 흐름으로 엉키고 대화한다. 독도에 관한 한국 외교는 땅속줄기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

 독도 외교에 가장 설득력 있는 역사적인자료는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독도가 한국땅임을 증명하는 옛 지도들이다. 정부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전모와 독도를 한국 땅으로 표시한 옛 지도들을 남김없이 수집·정리해 한국인 모두에게 보급해야 한다.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역사적인 문건과 지도의 소개, 거기에 대한 반론도 정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외교관들뿐아니라 한국인이면 누구나 외국인을 만날때 독도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전문가적 수준의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도에 관한 조용한 외교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외교부와 재외공관이 무사안일에 빠져 있으면 언제 제2의 독도 표기 변경을 당할지 모른다.

 10·4 합의를 가지고 남북한이 외교적으로 충돌한 것도 유익한 교훈을 남겼다. 원론적으로 말해도 금강산 총격 사건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으로 가져간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아세안+3(한·중·일)의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의사건이 아니다. 외교부는 의장국인 싱가포르의 외교장관이 최근 북한을 방문해 국빈 대접을 받은 사실, 북한 외상 박의춘의 ARF 참석이 싱가포르 공식 방문을 겸하고 있어 두 나라 외상들이 따로 만찬까지 함께한 사실이 10·4 합의 공방에 미칠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실책도 저질렀다. 한국은 10·4 합의 물타기에 실패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서명한 북한 최고지도자와의 합의를 평가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은 처음부터 자가당착이다.

 우리는 회원국이 아닌 테헤란 비동맹회의에서는 제3국의 대표들에게 부탁해 싱가포르에서 실패한 물타기에 성공했지만 기쁠 것 없는 성과다. 한반도의 시계를 냉전시대로 돌린 책임의 큰 몫은 우리 측에 있다. 남북 대결이 가을 유엔총회까지 계속되면 우리는 실체 없는 문제에 많은 국력을 소모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국회 개회사에 밝힌 대북 제의를 보완해 대결을 대화로 전환하는 실질적 구상을 내야 한다. MB외교는 독도와 싱가포르의 경험을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아야한다.

김영희 국제전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