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소련 부활 꿈꾸는 러 공산당-워싱턴포스트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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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 국가두마(하원)가 소련의 해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최근 결의한 데 대해 주변국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방문 길에 이 소식을 접한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은 『매우 불온하고 무책임한 처사』라고 즉각 비난했다.소련의 해체로 숙원이던 독립을 이룬 러시아 이웃 국가들의 반응은더욱 민감하다.이들은 『내정에 대한 일방적 간섭 이며 국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맹렬히 공격했다.
물론 두마의 결의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대외 정책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오히려 옐친에겐 재선 캠페인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결의는 공산주의자들의 속셈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불길한 징조다.특히 대선 캠페인에서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가 앞서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주가노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 주변국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 일 경우 심각한 사태가 초래될 것이다.오늘날 많은 러시아 사람들은 「잃어버린 제국」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다.하루아침에 다른 나라 영토에 남겨진 동료 러시아인들의 삶도 걱정이 아닐 수 없다.이같은정서는 옛 소련 공화국들이 보다 긴밀 하게 다시 통합돼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옛 소련 공화국들이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다시 결합한다면아무 문제는 없다.그러나 소련 해체 자체를 무효로 해야 한다는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과거 소련 탄생 과정에서 자행됐던 만행을 생각할 때 옛소련에 속했던 나라들의 지위를법적으로 논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사실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그들은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연방 재건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현재 러시아 군은 작은 체첸공화국 게릴라들조차 제압하지 못한 채 쩔쩔매고 있다.게다가 러시아는 지리적 이 점과 경제개혁의 성과로 현재 주변국들에 비해 번영을 누리고 있다.벨로루시나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모스크바에 가 러시아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러시아가 옛 소련을 강제로 재건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실로 엄청날 것 이다.
이 문제에 대한 미 클린턴 행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러시아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고 또 러시아의 내부 정책이 어떻게 바뀌든러시아가 다른 나라의 주권에 개입하는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두마 결의는 공산주의자들의 큰 실수였다.인기 회복에 부심해온 옐친은 이를 계기로 선거판을 「양식있는 판단」과 「무모한 실지(失地)회복」 사이의 선택으로 몰아가고 있다.주변국들의 거센 반발과 자연스런 재통합 분위기의 퇴조는 공산주의 자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옐친 측근들은 두마 결의 때문에 선거가 연기될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다.
어떤 상황도 러시아의 민주 발전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다.설사 공산당이 집권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정리=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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