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석방 인질 꾸짖는 日 사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일본의 부모가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나이의 자녀에게 가장 먼저 하는 교육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폐가 안 되는 행동과 마음가짐이다. 그만큼 일본 사람들은 규율에 관한 한 유별나다 싶게 집착한다.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지난 15일 풀려난 일본인 3명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에서도 이 같은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배어 나온다. 한국 같으면 기쁨에 찬 가족들과 정부의 환영 반응 일색으로 지면이 채워졌을 테지만 일본 언론들은 달랐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6일자 사설에서 "정부 권고를 무시하고 이라크에 입국한 이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의 행동은 자위대의 인도지원활동은 물론 일본의 외교정책을 속박했다"고 꾸짖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경솔하다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외무성이 그렇게 가지 말라고 했다. (이라크에)그래도 들어갔다면 자기 책임 아래 몸을 지켰어야 했다"고 야단쳤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맘대로 이라크로 들어가선 '일이 생기면 정부가 도와주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며 "일본 정부와 사회에 폐를 끼친 것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산케이신문)는 주장도 나왔다.

정치권에선 위험지역 여행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고 이를 무시하고 들어갔다 납치되면 구출 비용을 본인에게 물리자는 얘기도 나온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도 "올 들어 열세번이나 이라크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모를 일"이라 했고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외상도 "앞으로 해외에서의 행동은 자기 책임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납치 사건 직후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인질 가족들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며칠 전부터는 "국민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며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고 있다.

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