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신문이 베스트셀러라서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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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미국 뉴욕 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빌 클린턴의 회고록이 언제 출간되느냐에 따라 민주당 후보 존 케리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1월 대통령선거 전에 나올 경우 언론의 관심이 케리 후보보다는 클린턴 쪽으로 쏠릴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가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클린턴은 1000만달러가 넘는 선인세에 보답이라도 하듯 미천한 출생 배경에서부터 다양한 스캔들까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답니다. 대통령선거 열풍까지 누를 만한 출판 소재가 있는 미국 출판계가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그즈음 한 출판사 사장이 신간을 내놓으면서 앞으로 몇 달 동안 책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신문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 하기 힘들다”는 이유였습니다. ‘풍(風) 풍 풍’으로 요란했던 총선도 그렇지만, 그 후에 다시 몰아칠 탄핵풍을 견디기가 더 힘들 듯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하기야 2002년 대통령선거부터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까지의 과정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실명 정치소설 『대통령』(이수광, 일송북)이 출간 1주일 만에 3쇄를 찍은 걸 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소설보다 더 극적인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출판시장 침체의 원인을 출판 외적인 요소로 돌려서는 곤란합니다. 북리뷰에 담을 책을 고를 때 ‘안배’ 차원에서 국내 저자의 책을 찾지만 손에 잡히는 책은 드뭅니다. 그리고 ‘…형 인간’유의 책은 왜 그렇게 많습니까. 책과 대중의 행복한 만남을 유도할 수 있는 ‘책의 날’(23일)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벤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날 스페인 등에서는 도시 전체가 책으로 넘쳐나는 행사가 펼쳐진답니다.

정명진 Book Review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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