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실용] 채식주의, 그건 식생활 아닌 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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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건강한 채식 식단에 대한 정보를 기대했다면, 책을 펼치기 전에 그 기대를 접어야 한다. 뜻밖에도 ‘베지테리안(vegetarian)’은 ‘베지터블(vegetable·채소)’에서 파생된 단어가 아니다. 어원을 거슬러가니 ‘건강·활력’의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베지테리안’을 ‘채식주의자’로 옮기는 것도 온전한 번역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왜’ 먹지 않느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베지테리안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건강, 동·식물에 대한 사랑과 공존, 나아가 사회와 지구의 평화 및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육식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원시사회에서 사냥으로 고기를 얻은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자’로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남녀 불평등은 출발했다. 또 한 사람이 먹을 고기를 얻기 위해 열 사람 분의 식량을 사료로 사용하는 사이에 지구 저편에서는 수만명이 굶어죽는다.

다소 거창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채식주의는 식생활 영역을 넘어선 사회적 의미이며,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신념이고 철학이다. 그리고 플라톤·레오나르도 다빈치·바그너·톨스토이·간디 등 역사 속 베지테리안들의 이야기를 통해 채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영혼은 다른 동물 속으로 이주한다. 모든 생명은 서로 친척이다”라는 믿음에 따라 제자들과 함께 빵과 꿀, 야채를 즐겼다. 또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의 계율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채식을 했다. 남녀 평등을 주창한 영국의 문학가 버나드 쇼도 25살부터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환경운동·반전운동·미국의 독립혁명 등 저자가 채식주의와 맞붙여 놓은 사상과 이념의 폭도 매우 넓다.

다만 “‘채식주의’라는 명칭으로 이미지화한 베지테리아니즘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도 깨지길 바란다”는 저자의 바람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채식과 육식을 선과 악의 대립인 양 다룬 것은 ‘잡식’ 독자로서 아쉽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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