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놀고 싶은 걸 어떡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 골만 더 넣으면 집에 가야지.’4학년인 비차는 구구단을 까먹었다고 선생님께 야단 맞고, 친구들 숙제나 베낀다고 학교 신문에 조롱거리가 된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하겠다던 결심은 축구장에만 들어서면 와르르 무너진다.

‘딴 짓 하지 말고 밤 10시쯤에는 잠자리에 들고, 수업이 끝나면 한 시간 반쯤만 축구를 하고, 맑은 머리로 공부를 하고, 공부를 다 끝내면 하고 싶은 걸 해야지’라고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어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비슷한 친구가 또 하나 있다. 이름은 코스차. 둘은 수학 점수도 똑같이 2점을 받는다. 물론 낙제점수다. 비차의 아빠는 “친구들한테 창피하지도 않니?”라고 묻는다. 비차는 “2점 받은 게 저 혼잔가요, 뭐”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아빠는 “왜 코스차를 따라 하려고 하니? 공부 잘하는 애들을 본받아야지”라며 기막혀 한다.

『내 친구 비차』는 1951년 러시아에서 출간된 동화다. 노소프는 이 작품으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 국가상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동화에서는 공산주의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2004년 서울로 무대를 옮겨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동화는 스스로를 의지가 박약하다고 여기는 비차의 시선으로 4학년 한 해를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놀고 싶고, 그러면서도 공부 못하는 것이 창피한 아이의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친구 코스차는 이런 갈등을 피해보려고 시험 치는 날이면 꾀병을 부리고 학교에 가지 않는다.

공부를 해야한다는 당위성은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아이들.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공부하라”고 외치는 부모들의 과거 모습이기도 하다.

홍수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