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보는 세상] 도시로 온 너구리 "함께 살 수는 없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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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은 그림책에서, 동화 속에서 그리고 애니메이션 작품과 동물원에서 귀엽거나 무섭게 생긴 동물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하루 종일 깔깔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내밀거나 친구하자고 소리친다. 그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지쳐 잠에 떨어진 아이는 꿈을 꾼다. 호랑이와, 코끼리와, 고슴도치와, 공작새와, 돌고래와 집안에서 놀이터에서 함께 뛰노는 꿈을!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꿈일 뿐이다. 태초의 한 장면은 인간과 동물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경계하며 살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도시라는 사람들의 특별한 구역이 생기면서 동물은 이제 우리와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맹수이건 너구리처럼 작고 힘없는 동물이건 말이다. 여기 그 너구리들의 인간세계 경험을 동화로 쓴 이야기가 있다.

김진우의 『너구리몽몽』(문원)은 산 속의 너구리가 사람이 되어 사람들과 지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가지산 꼬마 너구리 몽몽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부터 너구리들이 보호 받으며 살 수 있게 될는지 알아보라는 너구리들의 부탁을 받고 서울로 오게 된다. 몽몽은 다른 너구리들과는 달리 공중제비를 하면 사람이 되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이런 부탁을 받은 것이다. 몽몽이가 서울로 올 때, 할아버지 너구리도 함께 따라왔다.

할아버지 너구리는 나뭇잎으로 돈을 만드는 특별한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다. 서울에 온 몽몽과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도 익히고, 아파트를 얻고 텔레비전·가스레인지·냉장고 등도 들여다 놓았다. 이에 필요한 돈은 할아버지가 나뭇잎을 돈으로 만들어 썼다. 그러나 이게 문제였다. 나뭇잎으로 만든 돈은 시간이 지나자 나뭇잎으로 바뀌어서 둘은 쫓기는 신세가 되어 헤어지게 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동물보다 못한 짓,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몽몽과 할아버지는 쓸쓸히 산으로 돌아간다.

『킹카주 너구리 비슈이』(디자인하우스)는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프랑스의 폴 뒤 부셰의 작품이다. 아마존의 열대 밀림에 사는 비슈이는 태어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사냥꾼이 쏜 화살에 엄마를 잃게 되고 자신도 붙잡힌다. 엠마는 이런 비슈이를 구해주고 온갖 정성을 다해 돌봐준다. 비슈이도 엠마를 좋아하게 된다. 그러다가 사정이 생겨, 비슈이는 미나의 집으로 보내진다. 미나는 비슈이를 잘 돌보아주었으나 비슈이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런데 미나의 조카인 프레데릭은 비슈이가 도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래 살던 숲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했다.

도시에서 살게 하는 일은 비슈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엠마는 그 말에 처음에는 반대하지만 마침내 비슈이를 숲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심한다. 비슈이를 숲으로 돌려 보내주면서 프레데릭은 말한다. “네가 살 곳은 여기야. 우리랑 같이 사는 게 아니라고, 자, 어서 가라니까!”

두 편의 이야기에서 너구리는 결국 사람들과 함께 도시에서 살지 못하고 가지산으로, 아마존의 밀림 속으로 도로 돌아간다. 몽몽 너구리와 할아버지 너구리가 서울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살펴본 사람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자기들 위주로만 살고 있다는 것이다. 킹카주 너구리 비슈이는 엠마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나 도시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살지만, 문명의 도시는 비슈이가 야생의 본능을 마음대로 드러내놓고 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람과 너구리는, 함께 살 수는 없을까.
이 세상의 주인은 사람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동물만이 주인인 것도 아니다. 사람과 동물이 서로 마음을 나누며,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윤동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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