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디지털에 빠진 10대 책세상에 초대해 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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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청소년 도서 전문 필자가 드문 편이고 청소년 도서의 선택을 돕는 매체도 다양하지 못하다. 청소년들이 제공해줄 수 있는 폭넓은 지식과 감성의 세계에 연착륙하지 못하고 온라인과 디지털 문화로 기울어져버리는 까닭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게 책을 멀리 하게 된 청소년 친구들에게 독서 취미를 다시 붙여 줄만한 책들은 그래도 많다. 기획 의도, 내용과 글쓰기의 충실성, 책의 만듦새 등을 감안해 몇 권 소개한다.

먼저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 클래식’ 시리즈다. 각종 필독도서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전, 논술 고사나 수능 시험 대비 차원에서라도 그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는 고전, 그러나 외국 책의 경우 읽을만한 번역서가 나와 있는 고전은 가물에 콩 나듯 하다.

몇 줄 안 되는 정리 요약문을 암기하는 것으로 고전 읽기를 마감할 수밖에 없다. ‘주니어 클래식’은 그런 현실에 착안한 셈이다. 고전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도 아니고 고전에 관한 지식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고전을 교실에서 강의하듯 설명해준다. 강의 형식을 통해 각 고전의 배경, 내용, 특징, 현재적 의미 같은 것을 두루 살피고 있는 것이다. 『종의 기원』(윤소영)과 『소크라테스의 변명』(안광복)이 먼저 나왔는데, 앞으로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고전을 ‘새로 써서’ 내놓을 예정이라니 기대해 봄직하다.

고전 못지 않게 척박한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이 미술사다. 학교 미술 시간에 몇몇 유명 화가들의 이름과 대표작 몇 점만 대충 접하면 끝이다. 그들이 왜 위대한지, 작품 뒤에 어떤 예술사적 배경이 있는지, 궁금증을 풀 길이 없다. 다행히 노성두·염명순·조정육·최석태 등이 집필한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아이세움) 시리즈가 있다. 반 고흐·미켈란젤로·다 빈치·피카소·렘브란트·김홍도·이중섭·장승업·정선 등과 만날 수 있다.

작품 세계를 미술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해설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해설도 도판 자료와 함께 볼 수 있다. ‘삶의 굴곡과 고통스런 그늘을 다 경험한 렘브란트는 이제 고향 네덜란드의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을 예술의 그릇에 담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머리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는 가슴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오는 짧은 거리를, 예술의 더딘 발걸음으로 걷다 보니,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빛의 유혹에 영혼을 던진 렘브란트』(노성두 지음)의 일부인데, 연령층을 불문하고 미술사에 식견이 없는 독자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다.

고전과 미술사를 읽었다면 이제 재미있는 과학 차례다. 로빈슨 크루소를 패러디한 주인공 노빈손이 무인도·남극·에버랜드·아마존 정글·버뮤다 등을 돌아다니며 치르는 모험 이야기를 통해 과학 지식과 원리에 접근할 수 있는 ‘노빈손 시리즈’(뜨인돌)가 있다. 박상준·박경수·함윤미·문혜진 등 여러 필자들의 ‘날렵한’ 글쓰기와 만화가 이우일의 은근한 재치가 행복하게 만난 시리즈로, 놀이와 배움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에듀테인먼트의 모범 사례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좋은 청소년 도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서점에서 조금만 부지런 떨면 좋은 청소년 도서들을 어렵지 않게 감별해낼 수 있다. 부지런 떠는 유별난 독자들이 많아질 때, 책의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이는 출판사들이 당연히 많아진다. 사실상 시작 단계인 청소년 도서는 더욱 그런 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표정훈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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