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7>‘백상어’를 춤추게 한 53세 늦사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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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 24면

늦은 감이 있지만 ‘백상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지난주 브리티시 오픈에서 공동 3위에 오른 53세의 노장 그레그 노먼. 블론드 머리를 휘날리며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쳐 ‘백상어(Shark)’란 별명이 붙은 그는 이번 대회에서 신기(神技)의 샷으로 골프 팬들을 매료시켰다.

다른 선수들은 시속 50~60㎞ 강풍을 맞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지만 노먼은 결정적일 때마다 특유의 ‘녹다운(Knockdown) 샷’을 앞세워 스코어를 지켰다. 힘을 빼고 백스윙을 반 정도만 하는 것 같더니 임팩트 이후엔 폴로 스루도 제대로 하지 않는 요상한 샷.

“녹다운 샷이 뭐야. 펀치 샷이랑 다른 건가. 어떻게 치면 되지요?”
지난주 지인 한 분의 질문을 받고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은 노먼의 샷이 워낙 ‘창조적’이었기 때문이다. 120야드 거리에서 5번 아이언을 쓰기도 했고, 100야드 남짓의 거리에선 7번 아이언을, 209야드에선 6번 아이언을 꺼내 들기도 했다. 당황한 필자는 “펀치 샷과 녹다운 샷은 비슷한 것 아니겠느냐”며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당장 필자가 수학한 캘리포니아의 골프스쿨(PGCC)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녹다운 샷이란 펀치 샷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거센 바람이 불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컨트롤 샷이다. 그러나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해 두지 않으면 실전에서 구사하기가 쉽지 않다.”

J골프 채널의 골프 해설을 맡고 있는 박원 프로는 이렇게 말했다.
“노먼의 녹다운 샷이 돋보이는 건 평소보다 클럽을 길게 잡고도 거리와 방향을 자유자재로 맞춘다는 것이다. 타이거 우즈가 7번 아이언을 가지고 100야드에서 150야드까지 마음대로 공을 날려 보내듯 노먼 역시 같은 클럽을 가지고 거리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기량을 갖췄다.”

PGA 정회원(클래스A)전욱휴 프로에게는 녹다운 샷 구사 요령을 문의했다.
“클럽을 짧게 잡고 백스윙의 크기를 평소의 절반이나 4분의 3가량으로 줄인 뒤 툭 박아 쳐야 한다. 임팩트 이후엔 폴로 스루를 하지 않고 하프 피니시로 스윙을 끝낸다. 체중을 왼발 쪽에 둔 뒤 공을 평소보다 오른발 가까이에 놓고 ‘툭’하고 끊어 치면 방향과 탄도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3주 전 노먼과 결혼했다는 테니스 스타 크리스 에버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전 부인 로라에게 무려 1억 달러(약 1000억원)가 넘는 위자료를 주고서도 결혼을 강행했다니 말이다. 노먼은 “에버트 덕분에 영감을 얻었다”며 이번 대회에서 선전한 비결을 아내의 공으로 돌렸다. 새 아내로부터 영감을 받았지만 우승은 하지 못한 노먼. 갑자기 서양 속담이 떠올랐다.

“여자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영감을 주지만, 위대한 일을 성취하는 것은 막는다.(Woman inspires us to great things, and prevents us from achieving them.)”(작자 미상)

“반드시 결혼할지어다. 좋은 아내를 얻게 되면 행복해질 것이고, 나쁜 아내를 만나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소크라테스)
결국 결론은 사랑의 힘은 위대하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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