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이 시대의 변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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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한봉(19662~) '이 시대의 변죽' 부분

변죽을 아시는지요

그릇 따위의 가장자리, 사람으로 치면

저 변방의 농군이나 서생들

변죽 울리지 마라고 걸핏하면 무시하던

그 변죽을 이제 울려야겠군요

변죽 있으므로 복판도 있다는 걸

당신에게 알려줘야겠군요

그 중심도 실은 그릇의 일부

변죽없는 그릇은 이미 그릇이 아니지요

당신, 아시는지요

당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변죽,

당신을 가장 당신답게 하는

변죽,

당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변죽 (후략)



변죽들. 모든 풍경과 시간들의 배경이 되는 변죽들. 주역은 되지 못하고 늘 언저리에서 쓸쓸하게 맴도는 변죽들. 언제나 우리 제일 가까운 곳에 웃고 우는 변죽들. 우리 제일 먼 변두리까지 스스럼없이 펼쳐져 있는 변죽들. 이름보다도 슬픔보다도 그 어떤 아픔보다도 먼저 당신의 마음 안에 환한 꽃으로 피어나는 변죽들. 우리들 마음 안에 중심보다 화사한 별밭 있음을 일깨워주는 희망의 불씨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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