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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명문대 합격이 다는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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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요즘 4월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이 있다.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에 당당히 합격한 특목고 유학반 학생들에 대한 기사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보통 그런 기사를 접하면 놀라움과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드러나지 않은 면이 있다.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국의 톱 학교에 들어가는 학생들 중 처음부터 학교에 잘 적응하며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특목고 유학반의 교육 시스템에 있다. 모 외고 홈페이지의 유학반 소개를 보면 "21세기 국제화 시대에 세계로 뻗는 한국인을 양성한다"는 취지 아래 만들어졌다고 돼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3년 동안 인재를 양성하기보다 무조건 명문 대학에 학생들을 많이 입학시켜 학교 이름 알리기에만 힘을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제화 시대의 인재를 양성한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대학 입학 준비와 다른 게 하나도 없다. 먼저 유학반 학생들의 고등학교 성적은 무조건 톱이다.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톱 수준의 학교 성적을 원하기 때문에 'A(수)'를 쉽게 주거나 영어로 이뤄지는 강의 성적과 페이퍼는 점수를 후하게 주어 모두 우수한 성적을 받는다.

지난해 특목고 유학반을 갓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쓰기(writing)를 가르쳤던 적이 있다. 이들은 모두 미국 최고의 대학들에 합격한 상태였지만 이들의 쓰기 실력은 많이 부족했고 그중 한 학생의 수준은 심각할 정도였다. 이 학생의 에세이는 문법.표현력.구조.논리.열정, 어느 면으로 보아도 'F(가)'였다. 하지만 이 학생은 자신의 쓰기 실력이 우수하다고 생각해 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외고를 다니던 3년 동안 영어로 쓴 에세이에서 모두 'A'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서 SAT I.II(미국 대학입학시험)를 준비시켜 주는데 이는 학교에서 수능시험을 가르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특목고 커리큘럼들을 보면 영어로 이뤄지는 강의도 AP 시험들(미국 대학 입학에 필수는 아니지만 톱 대학들이 선호한다)을 위해서다.

비슷한 수준의 미국 사립 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에는 SAT 등의 대학 입학시험 준비를 위한 과정이 없다. 학생들이 각자 알아서 준비한다. 대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 충분히 적응할 수 있도록 쓰기와 토론 위주의 교육에 집중한다.

현재의 특목고 유학반은 아주 우수하고 영어도 뛰어난 학생들에게 미국인이나 미국인 교포 선생님들이 3년 동안 미국 대학 입학 준비만 시키는 것이다. 사실 대학 입학은 뛰어난 인재가 되기 위한 100m 달리기에서 약 50m만 뛴 것인데, 나머지 50m는 상관없다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SAT I.II, AP 시험 점수와 학교 성적이 거의 완벽해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명문 대학에는 들어갔으나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돌아오거나, 또는 조금 더 낮은 수준의 학교로 편입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프린스턴대학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한국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한 학생은 "아무리 써도 끝이 없는 리포트들과 미국식의 토론 방식에 도저히 익숙하지 못해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비록 잘 버티고 있는 학생이라 하더라도 아주 힘들게 공부하고 있다. 스미스대학에 유학을 간 한 학생은 교수가 "이것도 글이냐. 네가 어떻게 우리 학교에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다. 내일까지 다시 써와라"며 야단을 쳤다고 한다.

인터넷중앙일보의 나도 한마디에 특목고 학생들의 미국 대학 입학 기사에 대한 어느 독자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단순히 명문 대학 합격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니…"라는 지적이 인상 깊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인재를 키우기 원한다면 똑똑한 학생들을 데려다 시험만 잘 보는 기계를 만들어 미국의 명문 대학에만 보내는 교육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그보다는 미국의 어느 대학에 들어가든 미국에서의 생활과 대학에서의 공부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21세기 국제화 시대에 세계로 뻗는 한국인을 양성한다"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콜린 박 서울대 유학상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