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맞벌이 아내의 쓸쓸한 퇴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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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간호사 아내가 올 3월로 흰옷을 벗어 던지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돌아온다.12년 세월을 병원 근무하던 아내가 퇴직한다.그러나 힘든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집으로 오게 될 아내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스침은 왜일까.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아들 녀석 때문이다.
지금 만 네살인 아이는 태어나서 1년여는 안양 친할머니 댁에,또 1년여는 인천의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우리가 아이를 직접키우게 된 것은 결혼 직후 분양받은 아파트에 작 년 9월 입주하면서 부터다.
맞벌이 부부가 거의 그렇듯이 우리들도 출근할 때 아이를 놀이방에 맡긴다.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고,어르고,협박(?)해 반강제적으로 떼어놓고 출근하면 내 마음도 하루종일 편치 않은데 아내는 오죽하랴.
번번이 눈물을 흘리는 아내에게「자기 또래 애들하고 노는 게 애한테도 좋다」는 식의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아침마다 아이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며 지쳐 갈 때쯤 혹시 우리가 잘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고개를 들기 시작했다.주위분들도 자식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말들을 자주하고 또 엄마가 돌보지 않고 놀이방에 보낸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사례를 들으면서 차츰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전문직업인으로 정년퇴직 때까지 다니겠다던 아내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나마저도 부모 노릇 제대로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두려워지기 시작했을 무렵 우리는 결심을 하게 됐다.
매월 고정수입이 감소가 될 것이지만 돈으로는 도저히 그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아내가 퇴직하기로 했다.
그러나 왜 아내는 쓸쓸해 보이는 것일까.청춘을 바쳐 열심히 일해왔던 직장을 떠나는 섭섭함 때문일까.기혼 직장여성에게 되풀이되는 이런 악순환이 언제쯤 멈추어질까 하는 생각이 아내를 바라보는 맞벌이 남편의 가슴을 짓눌러온다.
정범례 가톨릭대 의과대 성가병원장방사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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