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벌어도 내 힘으로 사니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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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경력 34년째인 74세의 곽윤옥씨가 23일 서울 상봉동 차고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정훈 인턴기자]

23일 오전 5시 서울 신내1동 한옥 주택. 왼쪽 가슴에 ‘모범기사’가 새겨진 남색 조끼에 하늘색 셔츠를 받쳐 입은 할머니가 방문을 열었다. 집 한편에 5평 남짓 되는 단칸방이다. 25분쯤 걸어 ‘부광통상’이라는 택시 회사에 도착했다. 동료가 인사한다.

“누님 오셨어요. 이달엔 만근하겠네.”

74세 곽윤옥씨. ‘자타공인’ 전국 최고령 할머니 영업 택시기사의 하루가 시작된다. 할머니는 오전 7시쯤까지 상봉동 근처만 돈다. 아침을 집에서 먹기 위해서다. “한 끼에 4000~5000원 하는데….” 점심만 사 먹는다.

할머니가 6월에 번 돈은 75만1950원이다. 매일 8만9000원을 납입해야 하는데, 그걸 넘기가 쉽지 않다. 할머니는 두 달 전부터 밤 근무를 하지 않는다. 고속도로나 올림픽대로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도 될 수 있으면 안 탄다.

“손님 생각 해야지. 이제 나이 먹어서 장거리나 밤근무 하면 안 돼. 다음날 힘들어서 일도 못 하고.”

실은 4월 술 취한 50대 손님에게 애를 먹은 게 이유였다. 이리저리 차를 돌리다 나중에는 젖가슴까지 만지려 했다. 이제 힘이 부친다. 곽씨는 오후 4시까지 운전한다. 이날은 8만원을 입금했다. 9000원이 구멍 났다.

할머니는 35세에 혼자가 됐다. “양키물건(미제)도 팔고 안 해본 장사가 없어. 흥정을 못 해서 남는 게 없더라고. ‘택시 요금은 안 깎는다’고 해서, 면허 따서 택시 몰았지.” 그때 나이 마흔이었다.

1996년 개인택시를 받았다. 은색 프린스. 그러나 2004년 6500만원에 팔았다. 큰아들(54)이 신발공장을 한다고 해서 돈을 대줬다. 그 후 도로에서 프린스를 다섯 번 더 봤다. 잃어버린 자식 같았다.

개인택시를 팔고 다시 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주행 거리가 줄었다. 보증금 200만원, 월세 20만원 단칸방이 버거웠다. 2006년 월세 13만원(보증금 100만원)짜리로 왔다.

지난겨울엔 석유값이 확 뛰었다. “보일러를 한 번도 안 땠어. 전기장판으로 등 지지고, 난로로 외풍 막으면 되거든.” 건강하다고 하지만 무릎 약과 혈압 약은 계속 먹어야 한다. 공과금도 만만치가 않다. “옷 사 입은 지가 몇 년은 넘었다”고 했다.

주위에선 “젊은이도 힘든 영업 택시를 할머니가 하다니 대단하다”고 한다. 그러나 곽씨는 행복하다. “손자 보고 자식들에게 얹혀사는 게 다인데, 일해서 혼자 힘으로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해. 운전대만 잡으면 아픈 것도 다 잊어.” 할머니가 사는 이유다.

또 있다. 내년 12월이면 무사고 3년이 된다. 3년이 되면 개인택시를 살 수 있다. 할머니는 “큰아들이 ‘건강하기만 하면 개인택시 다시 사 준다’고 했어. 내 마지막 소원이야”라고 말했다.

‘쉬는 날엔 집에만 콕 박혀 있는 것’이 ‘인생 자립기’의 전부는 아니다.

“25일(토)엔 친구들이랑 섬에 놀러 가. 여름이잖아. 노인들은 2만5000원이면 된대. (매주)금요일은 원래 비번인데, 회사에 부탁해서 일해. 놀러 갈 돈 벌어야지.”

강인식 기자
사진=김정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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