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주] 성추행범 신고 받은 경관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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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자들은 모두 멋있게 생겼고, 하나같이 바람둥이라는 소리를 들은 바 있다. '멋있고 잘생겼다'는 이야기에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이라든지, 눈웃음과 윙크를 날리는 데 전 유럽에서 당해낼 나라가 없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하다. 이들에게는 여자를 유혹하는 것이 마치 세끼 식사를 해야 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이어서, 이탈리아 여성들은 남자들의 이러한 속내 뻔한 유혹이 없으면 이제 자신이 매력이 다했나보다 하고 서글퍼하기까지 한다고.

로마의 중앙역 테르미니에 막 발을 디뎠을 때다. 이탈리아에서 첫 기착지였다. 원조 피자 맛을 보고 싶었던 나는 무조건 근처 피자집부터 들렀다. 얌얌 맛나게 한판을 먹어치우고 지갑을 꺼내 돈을 건네주는데 느닷없이 이 피자집 주인, 나를 꽈악 끌어안는 것이 아닌가! '잘 가라'는 포옹을 빙자한 성 추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힘은 얼마나 센지, 뱀 같은 그 녀석의 품 안에서 입술 안 뺏기고 빠져나온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분한 마음에 부르르 주먹을 쥐고 얼굴 빨개진 채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두고, 레스토랑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어 할 뿐 누구도 나서서 도와주는 이도, 가게 주인을 나무라는 이도 없었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경찰서로 향했다. 그리고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성 추행범 신고하러 왔어요, 성 추행범!!!"

나는 흥분한 나머지 온갖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해 내가 당한 부당한 처사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썼다. 억지 키스를 간신히 피해 포옹에서 빠져나온 대목까지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소리. 도대체 뭐가 우습다는 건지, 여전히 흥분한 채로 그들을 쳐다보는데 가장 높은 지위인 듯한 경찰관 한명이 내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레이디.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아가씨에게 관심 좀 보였기로서니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발을 하고 그래요?"

그러더니 유치원 아이 다독이듯 내 엉덩이를 통통~ 두드리는 것이었다.

"그만 가보고, 여행 잘 하시오~. 차오!"

오, 맙소사. 믿었던 경찰관마저?

이후 쌀쌀맞은 태도와 화난 듯한 표정으로 모든 유혹을 원천봉쇄.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 미모(?)는 선글라스와 챙 넓은 모자로 가리고 다녔더랬다.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유혹을 삶의 목적인 줄 알고 살아가는 이탈리아 남자 모두, 내 적이라고 간주할밖에. 한국 남자처럼 뚝심이나 끈기가 없어, 포기가 빠르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눈병 걸린 사람마냥 날려대는 윙크와 추파에 한두번쯤 무심하면, 어깨 한번 으쓱하고 지나쳐 버리니 말이다. 뭐, 유혹을 바라신다면야 굳이 필요없는 사족이겠으나….

조정연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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