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손실 큰 고급인력 도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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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나라처럼 정부나 기업에서 고위직을 지낸 수많은 고급인력들이 한창 일할 나이에 나와 놀고 있는 나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5.16을 시초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이가 너무 많아집권에 비협조적이었거나 방관했기 때문에,혹은 그 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며 고생한 사람들에게 능력이야 있건 없건 자리 만들어주기 위해 싹쓸이로 밀어내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돼버렸다.그리하여 하루아침에 수십년 근무하던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은 날벼락을 맞아 50대 초반부터,때로는 40 대 중반부터 여생을 절망과 좌절 속에서 사회의 가장 비생산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예는 기업의 경우에도 흔히 볼 수 있다.젊은 회장이취임하면 전 회장 밑에서 일하던 주요 임원진은 능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자의반 타의반 (自意半 他意半)으로 무조건 그만두는 것이 하나의 미덕처럼 됐다.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와 이웃하는 중국.대만.싱가포르.일본을 보아도 60,70대에 사회의 일선에서 지휘하고 있는 고급인력을 쉽게 볼 수 있다.그렇다고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들나라보다 경제성장을 더 잘하고 있다거나 정치가 보다 앞서있는 것도 전혀 아니다.한때는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와 비슷하던 대만.싱가포르는 우리를 1.5배 혹은 2배 이상 추월한 것이 사실이며 쿠데타와 부패및 독선으로 만연된 오늘의 우리 정치풍토는더구나 이들 국가보다 나을 것이 없다.
정부가 바뀌었을 때 집권자가 사람을 갈아치울 수 있는 범위는국정을 원활하게 수행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법과 국민이 이를 허용하는 것이다.법으로 보장된 임기중이거나,하자가 없는 인력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무조건 자기 사람으로 갈아치운 역대 집권자는 분명히 국민이 위임한 범위 이상으로 인사권을 남용한 것이다.
기업의 경우에도 새 총수가 개인기업인양 마구 인사권을 휘둘러유능한 인력을 무조건 은퇴시키는 것은 분명히 인사권 남용이다.
외국의 경우처럼 경영과 소유가 분리돼 있는 경우에는 경영자가 주주로부터 위임받은 인사권을 새로 맡은 경영을 원활히 수행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우리의 경우에는소유주가 직접 경영하는 수가 많기 때문에 총수가 책임질 데가 없는 것이다.수많은 소주주가 있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경영에 거의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79년의 12.12이후 공.사의 자리에서 앞서 말한 이유로 물러난 최고급 인력은 어림잡아 매년 평균 약2천명쯤 될 것이고80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동안 이렇게 물러난 인력은 최소 3만명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물론 그 사이 6 5세 이상이 돼 이미 일할 나이를 넘어선 사람도 상당수가 되겠지만 문제는 이들 약 3만명의 인력이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교육받고 두뇌가 명석하고 경험이 많은 인력이라는데 있다.이들 인력이 재활용돼 무언가 국가 발전에 기 여할 수 있다면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재활용방안 강구해야 여기서 두가지를 제안할까 한다.첫째,이제는 정부나 기업의 총수가 바뀌더라도 「나이가 많기 때문에」 또는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등 지극히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준에 의해 귀중한 인력을 싹쓸이해내는 전통은 중단돼야 한다 .인력 싹쓸이는 바로 후진적이며 세계화가 덜 된것이다. 둘째,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각각 이미 싹쓸이당한 고급인력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물론 이들을 옛 자리에 다시 앉히라는 말이 아니다.급료나 예우를 종래보다 훨씬 못하게 하더라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몸 을 던져 다시 일할 사람은 수없이 많다고 본다.보다 더 보람있고 생산적으로 자기의 노력과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권력자와 기업의 총수들은 들어야 한다.
문희화 경희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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