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못 뽑지 못한 지방균형발전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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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대못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지역발전보고대회에서 “기존의 지방균형발전에 대한 계획은 원칙적으로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나눠주기식 지방균형발전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정부가 발표한 국토개발 계획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행정복합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를 그대로 나열한 데 불과했다. 인수위 시절 공언했던 광역경제권 중심의 개발계획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과거 지방균형발전 정책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그동안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행복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를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못질한 지방균형발전 정책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내용을 알 수 없는 어정쩡한 타협책을 국토개발의 밑그림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수도권 규제완화 계획은 아예 거론되지도 않았고 수도권의 공기업을 지방에 흩뿌리는 강제이전 계획은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최상철 지역균형발전위원장은 아예 대놓고 “(노무현 정부 시절 불문율이었던) 선(先) 지방발전 후(後) 수도권 규제완화의 방침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공기업의 지방이전을 전제로 한 혁신도시 개발 방침도 바뀐 게 없다”고 확인했다. 이 정부 출범 초기에 내세웠던 과감한 수도권 규제완화와 혁신도시 계획의 전면 수정 방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말로는 이전 정부의 획일적인 지방균형발전 정책과 다르다고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도 달라진 게 없다. 지역의 반발을 의식해 이미 이권화된 기존의 지방발전정책을 감히 손대지도 못하고, 새 정부의 새로운 국토개발계획을 과감하게 내놓지도 못한 것이다.

이 정부가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각종 정책을 추진할 동력을 적지 않게 잃었다는 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매사를 이런 식으로 눈치보기에 급급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