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눈가리고 아웅"대학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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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떤 학교가 시험을 쳤다.자신 있다는 학생들만 대상으로 했는데도 평균 90점부터 65점까지 성적 차이가 크게 났다.그러나학교측은 성적표를 교장의 책상서랍 속에 깊이 감춰놓고 학생들에게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고 발표했다.
학교측은 성적 나쁜 학생들이 소동을 피울까봐 점수를 절대로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궁금한 학생 몇명이 내 점수만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했다.그러나 학교측은 본인에게만 살짝 통보한다해도결국 소문이 나게 마련이므로 「영원한 비밀」로 덮 어두자고 했다.이 학교 학생들은 앞으로 계속 열심히 공부할까.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우리 대학 수준을 끌어 올린다는 취지로 매년 시행하는 종합평가인정제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첫 시행했던 94년의 7개 대학에 이어 지난해 종합평가 대상이었던 18개 대학도 모두 「인정」(합격)판정을 받았다.대학마다 점수(5백점 만점)가 4백72점부터 3백95점까지 천차만별이었으나 모두 우수한 대학으로 발표됐다.
92년부터 시행해온 학과평가 역시 「좋은게 좋은 것 아니냐」는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전국 94개 대학의 경영.무역.회계관련 학과를 평가한 결과 41개 대학이 최우수 또는 우수그룹으로 발표됐다.이름을 들어 알만한 대학은 모두 포 함됐다.그나마 끼지 못한 대학들도▶교육목표.과정▶학생▶교수▶시설.설비,행정.재정 등 영역별 우수대학 리스트를 통해 상당수 「구제」됐다. 대교협 실무진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올해에는 평가 결과를 공개할 방침임을 피력해 왔다.그래야만 대학들이 자극을 받고,수험생들도 대학선택의 판단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방침은 발표직전 평가인정위 최종회의를 거치며 철회됐다.
『가뜩이나 대학들이 등록금 분쟁등으로 어려운데 결과를 공표하면 뒤처진 대학의 교수.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큰일이 벌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대학평가인정제는 국가 경쟁력의 바로미터인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경쟁력은 냉정한 평가를 통해 길러지며,냉정한 평가는 필연적으로 앞서가는 대학과 뒤떨어지는 대학을 구분해낸다.뒤떨어지는 대학에 대한 배려로 선두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대학이 내는 회비로 운영되는 대교협으로서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회원들의 주장과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대학평가에 대학 외부 기관이 나설 수밖에 없다. 이것은 바로 교육개혁이 추구하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김동균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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