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독서교육 첫번째 비결은 ‘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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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앞두고 최근 몇 주 동안 어린이책이 쏟아졌습니다. 양도 양이지만 출판사마다 인기작가의 ‘전략상품’을 내놓는 터에 읽을거리가 넘쳐났지요. 솔직히 방학을 책 읽는 기회로 활용하겠다고 벼르는 아이는 드물 겁니다. 하지만 출판사의 기대나 부모의 기대는 하늘을 찌르는 듯합니다. 때맞춰 『독서지도의 정석』(글로연), 『우리아이 독서왕으로 만드는 7가지 비결』(북포스) 등 부모용 지침서도 신간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부모 마음을 솔깃하게 만듭니다.

사실, 아이들을 책에 푹 빠져 살도록 만드는 마법 같은 비결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부터 솔선수범하자” “책을 읽고 싶은 환경을 만들자” 등의 조언이야 너무 뻔해 하나마나한 얘기일 테고요.

그래도 지침서의 효용은 있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중간까지만 읽어줘 독서 흥미를 자극하라”“남자아이들에게는 독서퀴즈나 빙고 같은 리딩게임으로 책과 친해지도록 하자” 등은 요긴한 팁이지요.

명사들의 다양한 독서비법을 접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중국의 사상가 루쉰과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훑어보기 법’을 사용했답니다. 책의 서문과 후기 등을 먼저 훑어본 뒤 소제목을 읽어 책의 대략적인 구조와 요점을 파악하고, 그 다음에 중심내용을 선택해 본문을 꼼꼼하게 읽는 독서법입니다.

또 박학한 역사지식을 갖춘 중국의 정치가 우한은 스스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책의 제목과 저자·내용 등을 카드 한 장에 기록해 분류·보관하는 ‘카드 기록법’을, 독서광으로 알려진 중국의 작가 타이무는 책을 읽으며 중요한 부분에 원과 점을 찍어두는 ‘표시법’을 활용했다고 합니다.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독서법을 찾아낸 것이지요.

독서의 기본 조건으로 ‘심심함’을 꼽은 대목도 인상적입니다.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무엇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 조기교육에, 선행학습에 쫓겨 사는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항목일 겁니다.

책 읽기의 순수한 즐거움도 여유에서 나온답니다. “철학책을 읽으며 삶의 의미와 진리보다 논리의 오류를 찾기 바쁘고, 소설을 읽어도 감동을 느끼기 전에 인물분석부터 해야 하는 현실”을 만든 논술바람이 실은 독서교육의 가장 큰 장애물일지 모릅니다.

이번 방학엔 부모부터 “이런 이런 책은 꼭 읽히겠다”는 조바심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요. 쌓아놓은 책들을 아이가 외면할 땐, 프랑스 동화작가 다니엘 페타크가 말한 ‘독자의 권리’ 를 되새기며 말입니다. ‘건너뛰며 읽을 권리’‘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등 10가지 독자의 권리 중 첫째가 바로 ‘책을 읽지 않을 권리’랍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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