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과 유럽 새 협력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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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화려하게 진행되는 막후에서 한국은 조용하게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한국과 유럽연합(EU)이1일 ASEM모임과는 별도로 만나 서명한 「경제.정치협력 협정」의 결실(結實)이다.
15개 EU회원국 의회의 비준을 비롯,이 협정이 발효하기까지는 아직 거쳐야 할 절차가 많이 남아있다.또 협정의 내용이 경제와 정치문제 뿐 아니라 환경에서 문화에 이르기까지 현대 국제사회의 관심사를 두루 망라한 포괄적인 것이어서 실 제 운영에 이르기까지는 서로 많은 논의가 필요한 초보적 단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한 세력권과 무한한 협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데서 우리에게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협정이라고 평가된다.지금까지 개별국가를 상대로 한 특정분야에 관한 협정들은 많았지만 경제.산업협력은 물론 정치대화에서 마약및 돈세탁 등 거의 모든 세상사에 걸쳐 협력을 다짐하는 협정은 드문 일이다.더욱이 안보위주의 주변 4강외교에 치중해 오던 우리로서는 외교의 지평을 넓혀 세계화의 길을 더욱 다듬는다는 의미도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이번 협정은 당장의 실효를 기대하기 보다는 21세기를 대비해 비전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인 성격이 강하다.물론 단기적인 안목에서 우리로서는 계속 확대될 EU의 거대시장확보와 선진화된 제도와 과학기술에 대한 기대 가 크다.EU로서도 조선(造船)분야 등 산업구조조정을 위한 협력과 같은 현안에서부터 팽창하는 아시아경제권에 대한 접근로로서 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이 될 우리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이번 협정의 진정한 의미는 미래지향적으로 상호협력을 강화해 나가는데서 찾아야 한다.비단 경제.정치 등에서 당장의 협력뿐 아니라 유럽과의 문화적.정신적 교류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합리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근대 시민정신의 토양(土壤)인 유럽,민주질서가 자리잡힌 유럽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의 정신적 자산도 풍요롭게 키워야 한다.그래야만 유럽과 진정한 협력이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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