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 달래기 손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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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과 이란의 30년에 가까운 적대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이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대화에 나선 데다 이란에 이익대표부를 설치해 외교 관계까지 복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라늄 농축 활동을 계속해 왔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우방인 러시아까지 중단하라고 요구했지만 이란은 “순수한 평화적 목적”이라며 거부해 왔다. 이런 이란에 국제사회는 세 차례 경제제재를 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도 최악의 경우 무력 해결 방식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이란은 9~10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며 강경 대응 의지를 과시했다. 그러면서 세계 유가는 치솟았다.

그러나 미국이 외교적 해결에 적극 나섬에 따라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5+1 국가(유엔 안보리 5개국 및 독일)와 이란의 핵 협상에서 극적인 타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생겼다. 이란이 핵 개발 포기 의사를 밝히고 서방이 보상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 경제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워 온 이란 핵 문제가 풀리면서 고유가 등 세계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란 내 미국 이익대표부는 쿠바에 있는 미국 대표부와 비슷한 성격을 갖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한 1961년 쿠바와 외교관계를 단절했다가 77년 이익대표부를 개설했다.

미국의 태도가 급변한 이유는 무엇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내년 1월 임기 종료 전에 더 많은 외교적 성과를 얻기 위해 입장을 선회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 CNN 방송은 앞서 미국이 이란 핵 협상에 대표를 파견키로 한 데 대해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듯이 이란 문제에서도 동일한 접근법을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도 “미국이 이란 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와 이란에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협상 타결 이후 딕 체니 부통령 등 행정부 내 강경파들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중동 전쟁을 우려한 유럽과 이란 우방인 러시아도 미국에 협상하라고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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