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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黨 대학육성 공약 실망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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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7대 총선에 임하는 각 당의 대학교육 정책을 살펴봤다. 모두가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오늘의 대학교육을 맡고 있는 교수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울 뿐이다. 무너지고 있는 대학의 현실을 너무나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작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설득력 있는 비전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간의 개혁과 제도의 모순에서 나타난 대학교육의 경쟁력 저하요인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대학들이 많은 변화를 모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개혁이 대학의 경쟁력을 향상시켰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의 변화와 개혁을 면면이 살펴보면 교육의 백년대계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며, 교육당국은 마치 1년 농사의 결실을 바라듯 수많은 정책과 제도가 난무하는 가운데 혼란만 가중시키는 과오를 범했다. 그리고 실속 없이 포장만 달리하는 대학 개혁만을 주도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학 변화의 결과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먼저 웬만한 대학치고 최우수 대학이 아닌 대학이 없다. 최우수 대학이 많음에도 대학들은 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 것일까. 다른 것으로의 변화와 포장만이 최우수의 판단이었기 때문일까. 특성화.다양화.자율화를 통한 실속 없는 포장의 변화 속에 수많은 대학이 생겨났으며, 새로운 학부와 학과도 만들어졌다. 이는 마치 붕어가 없는 붕어빵과도 같다. 프랑스 건설분야의 엘리트 양성 고등교육기관인 국립 다리와 도로학교(Ecole Nationale des Ponts et Chauss?es)는 매우 고전적인 옛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금도 명문 교육기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 하나의 경쟁력 저하요인으로 학생 스스로가 골치아픈 과목보다는 학점 관리 위주의 편안한 과목을 선택해 학점을 채우고 졸업할 수 있는 제도는 결코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할 수 없다. 이는 마치 병사에게 훈련을 선택해 받게 하고, 용감한 병사가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평범한 전문가보다 뛰어난 전문가가 더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여러 개의 종지도 필요하지만 큰 항아리가 더 필요할 때다.

작금의 교육개혁과 제도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더욱 부채질했을 뿐 아니라 학력이 크게 저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물론 이공계 기피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다시 실패한 특성화.다양화.자율화로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면 이는 중병을 앓고 있는 대학들에 대한 올바른 처방이 아니다.

무엇보다 뛰어난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될 때 비로소 대학이 경쟁력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육당국은 지금이라도 대학의 실상을 정확하게 진단해 대학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서승직 인하대 교수.건축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