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단식·삭발·눈물·맨발유세·3보1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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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 선거 운동은 감정과잉이다. 각 정당의 지도급 인사와 후보들이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선거 초반 눈물과 3보1배, 큰절로 시작된 이 같은 감성정치, 이미지정치의 흐름은 종반에 이른 지금 단식.삭발.맨발유세로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무슨 명분인지도 알 수 없고, 내세우는 이유들도 납득되지 않는다. 선거 종반에 느닷없이 단식을 한다니 왜 단식을 하는 건지, 무엇에 항의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여당 대표가 이런 식으로 해야 표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 국민을 얼마나 얕잡아 보는 것인가. 보기에 따라서는 "이래도 표를 주지 않을 거냐"는 구걸 같기도 하고, 좋게 봐주어도 정치 쇼에 불과하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협박처럼 보이는 불쾌한 사례들도 있다.

더구나 이 같은 감정과잉 홍보전은 그 바탕에 자신만이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독선과 오만이 깔려 있다. '나는 선(善)이요, 너는 악(惡)이다'라는 확신 없이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경에 맞춘 선악의 잣대로 세상사를 재단하려는 사람이 정치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충돌하는 이해를 조정해 타협점을 찾는 것을 본령으로 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데는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런 감성자극에 우리 국민이 쉽게 넘어간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냉철한 이성이 없는 감성은 센티멘털에 불과하다. 억지 눈물과 정치 쇼에 눈길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후보의 됨됨이를 따지고 정책과 공약을 살펴야 앞으로 4년간 국정을 맡고, 민의를 제대로 대변할 의원을 뽑을 수 있다.

나라 장래를 생각해 봐도 이 같은 감정과잉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정 현안들을 심사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이벤트에 따른 즉흥적 대응을 한다면 나라 꼴이 어찌될 것인가.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감정에 떠다니니 언제 뿌리를 내릴 수 있는가. 국민의 냉정하고도 현명한 판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