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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重 전쟁 치르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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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이 사담 후세인과 전쟁하기로 결정한 직후인 2002년 12월 어느날, 나는 미 국방부 정책위원회에서 강연했다. 점심을 들면서 가장 열렬한 전쟁 옹호론자의 한 사람에게 "그래, 얼마나 이라크에 주둔할 작정인가"라고 물었다.

"18개월 이상 가지 않을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믿어지지 않은 나는 즉시 되받아쳤다.

"설마 농담이겠지. 이건 적군 섬멸을 목적으로 삼는 고전적 전쟁이 아니다. 그건 어항 속의 고기를 맞히는 것만큼이나 수월하다. 이번 전쟁의 목표는 훨씬 야심찬 것이다. 한 국가를 전체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작업이다. 독일과 일본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아는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두 나라엔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신보수주의자인 그 친구는 대답했다. "우리는 곧 떠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목표물이 된다."

그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전쟁 뒤에 숨은 낙관적 전제, 즉 미국은 금세 승리할 것이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라크 국민의 환호 속에 바그다드에 입성해 이라크 국회의장 아흐메드 찰라비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철수할 수 있을 것이란 가정이었다. 그 가정은 지금 휴지조각이 됐다. 지난해 11월부터 미국은 후세인의 오랜 권력기반인 수니파와 싸우고 있다. 그들은 팔루자 근처의 '수니파 삼각지대'에 잠복한 채 각종 국제 테러리스트 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지금은 시아파가 두번째의 전선을 형성했다.

시아파가 한주 동안 60명의 희생자를 내며 전투에 참가했다는 건 매우 골치 아픈 조짐이다. 그들은 미국 개입정책의 수혜자로 생각됐었다. 인구의 6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시아파는 1920년대 이후 줄곧 수니파 압제에 시달려 왔다. 쿠르드족과 함께 잔인한 후세인에게 억눌려 왔던 시아파는 미국을 환영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명백하다. 미국이 6월 30일 권력을 이양할 것이란 계획은 사문화됐다. 곧 철수할 것이란 계획도 마찬가지다. 공화당 소속의 리처드 루거 상원 외교위원장은 말했다. "나는 6월 30일이란 기한에 쫓기고 있다. 누구에게 권력을 넘길 것인가. 누가 안보를 책임질 것인가. 우리는 이 모든 문제들을 논의해야 한다."

이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반대파가 아니라 의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공화당 의원의 말이다. 미군 수뇌부가 더 많은 병력 주둔을 원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6월 30일이란 시한은 불변이라고 고집스레 되풀이한다.

부시 행정부는 이를 취소해야 한다. 오늘의 전쟁은 과거의 전쟁과 다르다. 옛날에는 적을 격파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지금은 적을 개혁하고 거듭나게 해야 한다. 21세기 전쟁은 정복이 아니라 질서의 전쟁이다. 진짜 임무는 승전 이후에 시작된다. 고정된 답은 없다. 나토의 보스니아 개입 이후 9년간, 코소보 개입 이후 5년간 여전히 다국적 군대가 그곳에 있고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의 개입은 단기 과업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내포한 섭정이다. 개입은 적군을 무찌르지만 말썽을 일으키는 분파적.인종적 투쟁은 억제하지 못한다. 때문에 외국 군대가 철수하는 순간 충돌은 반드시 터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소방수가 아닌 경찰관을 보내는 것이다.

소방수는 문을 따고 불을 끄면 철수한다. 반면 경찰은 계속 머문다. 미국은 매우 훌륭한 소방수였지만 경찰로서는 인내심이 부족했다. 미국은 선량한 사람과 악당을 구별하는 법을 배우고 오랫동안 머무를 것이란 사실을 보여줘야만 한다.

이것이 '6월 30일 권력이양'이 철회돼야 할 이유다. 지난주로 상황은 한층 더 위험해졌다. 미국은 수니파.국제 테러리즘.시아파에 맞선 3중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라크에 주둔 중인 13만명의 군대는 분명 두배로 늘어날 것이다. 이번 전쟁은 미국이 혼자 싸울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역사상 최강대국이 말썽꾸러기 국가의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는 부시 행정부의 꿈은 이라크에서 끝장 났다. 일방주의와 작별하고 국제 공동체와 손을 잡아라. 그 어떤 나라도 이라크에서 미국의 실패를 보면서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21세기의 미래가 바로 여기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차이트 발행인
정리=예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