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너무 튄다고 욕 먹어 … 이제야 지휘가 좀 보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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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 지휘자 함신익(50)이 돌아왔다. 그는 음악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유명하다. 함신익은 그가 6년간 이끌었던 대전시립교향악단을 2006년 떠난 뒤 한국 무대를 찾지 않았다. 축구복을 입고 지휘대에 서고, 댄스그룹 쥬얼리와 함께 공연하는 등 엄숙한 클래식 음악계에 찬물을 끼얹은 후였다.

“음악회에는 정작 와보지도 않고 욕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대중적 시도는 무조건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단했던 거죠.” 그때 그는 “혼자 튀려는 욕심에 단원과의 불화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함신익은 12일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과 윌리엄 월튼의 ‘벨사자르의 축제’로 2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오케스트라·합창단 230여 명을 통솔했다. 이 거대한 두 곡을 하루에 연주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 특히 대합창 음향의 경지를 마음껏 실험해본 ‘벨사자르의 축제’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지난달 25일 베르디의 진혼곡도 연주했다. 이 역시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어우러진, 대규모 작품이다.

“이제 좀 지휘가 보여요.”

함신익은 “92년 지휘자로 데뷔했지만 지휘의 길을 깨달은 건 최근 1년 새”라고 말했다. 95년 자신은 완벽한 연주라고 생각했는데도 “왠지 모르게 허무한 연주”라고 했던 한 오보에 주자의 지적을 경청하지 않았던 게 후회된다고도 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단원들을 이끄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됐다. 나쁜 말에 귀를 열었더니 내 실수가 보였다”는 것. 그래서 그는 연주가 끝난 후 단원끼리 서로 끌어안고 기뻐할 수 있는 음악을 꿈꾼다.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 작품도 그것 중 하나다.

그의 달라진 음악관은 예일대 재학생·졸업생으로 구성된 ‘예일 필하모니아’의 조련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2004년부터 맡고 있는 오케스트라다. “예전에는 단원들이 따라오지 못할 때 불같이 화를 내고 차갑게 내쳤죠. 지금은 ‘2분 휴식’이 원칙입니다.” 2분은 지휘자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다.

함신익은 2004년부터 예일대 정교수로 있다. 한국의 ‘튀는’ 지휘자와 미국에서 ‘성공한’ 지휘자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아왔던 그가 최근 낸 『예일대의 명물교수 함토벤』(개정판)에서 또 한번 우리 사회에 찬물을 끼얹었다. “내가 건국대를 졸업했다고 하면 한인 교포들은 대부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박사 학위가 없지만 예일대에서는 현장에 뛰어들었던 경험을 더 높이 사줬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는 “고국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 때문에 다시 한국 무대를 찾는다”고 했다. 예일 필하모니아와 함께 한국 공연을 여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일 오후 2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글=김호정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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