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대화의 창’ 막혔던 쇠고기 시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필자는 1987년부터 94년까지 뉴욕시청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한인사회와 뉴욕시장을 연결하는 시장 보좌관 역이었다. 구체적으로 뉴욕시청과 한인들의 연결창구 역할을 하면서 양측의 이해를 돕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89년 1월 흑인인 딘킨스 시장이 당선돼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브루클린에서 한인과 흑인 간 분규가 발생했다. 20여 년 동안 흑인 밀집 지역에서 여러 가지 영업을 하는 한인 상인과 흑인 주민들 사이에는 갈등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한인들을 돈만 아는 사람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인 상점 주인과 흑인 손님 사이에서 생긴 사소한 갈등이 계기가 돼 양측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여기에 흑인 시민단체가 개입하면서 분규가 장기화됐다. 딘킨스 시장은 갈등 해소에 적극 나섰다. 처음에는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한인들에게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임을 약속했다. 그 때문에 딘킨스 시장은 흑인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10개월 동안 지속된 이 사건은 갈등 해소엔 커뮤니케이션(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해 줬다.

2008년 한국에서 번진 촛불시위는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시작됐지만 오랫동안 쌓인 한국인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은 20년 전 뉴욕 흑인시위와 유사한 면이 있다. 당시 흑인들의 시위 때문에 한인 교포들은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봤다. 촛불시위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삶을 더욱 어렵게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흑인시위 당시에는 서로 간에 대화가 있었지만 촛불시위엔 대화의 창이 없었다는 점이다. 흑인시위 때는 뉴욕시 당국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면서 수많은 타운홀 모임, 다문화 행사, 흑인 주민과 한인 상인 간 대화 주선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갈등과 오해는 점점 풀려 나갔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자신의 주장만 외칠 뿐이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기자회견만 있고 소통은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정부와 시민들이 솔직한 대화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불신 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고유가와 원자재 난으로 세계 경제가 어렵고 한국 경제는 더욱 어렵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한국인들이 서로 붓을 맞잡고 화합의 컬러로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다이내믹 코리아’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소피아 강 코리아소사이어티 시니어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