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낙선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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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후에 총리까지 지낸 19세기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는일찍이 정치에 뜻을 품고 28세 때부터 의회진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낙선했다.그 무렵 한 구역 유권자 수는 고작 50명 안팎이었다.하지만 그는 관례대로 수백~수천명의 청 중을 상대로 대중연설을 감행해야 했다.청중들은 투표권도 없으면서 이 풋내기정객의 연설을 듣고 신랄한 질문과 공격을 퍼부어 그를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후보의 쩔쩔매는 모습은 낙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연설에 임하는 후보의 태도와 자세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역량을 가늠하는 시험대였던 것이다.
디즈레일리는 몇차례 경험을 쌓은 뒤 33세에야 당선했지만 특권층에만 투표권이 주어졌던 불평등한 선거제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정치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유권자들이 아니라 투표권 없는 시민대중이었다.자질과 역량이 모자라는 정치인들은 후보연설때 톡톡히 망신을 주어 유권자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했으며 설혹 당선된다 해도 그가 거리를 지나갈 때면 썩은 계란이나 토마토 따위를 던져 야유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등 많은 학자들은 영국 선거의 그같은 관습이 의회정치 발전의 기틀을 이뤘다고 진단하고 있거니와,그것은 평등선거에있어서의 투표행위가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것인 동시에 특정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이론과도 일맥 상통한다.아닌게 아니라 자질이 모자란다고 생각되거나 전력(前歷)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출마하면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아예 투표하지 않음으로써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게 상례다.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투표하지 않는 것보다 문제가 덜한 사람 에게 투표하는 것이 「문제 후보」를 낙선시키는 더욱 확실한 방법임은 물론이다.
이번 4.11총선에도 반개혁적이거나 전력에 문제가 있는 상당수 인사들이 출마할 전망이며,이에 따라 각종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특정후보의 당선운동과 함께 이들 후보의 공천철회와 낙선운동을 벌일 태세다.물론 중앙선관위는 선거법상 불법 이며 공명선거를 해칠 우려가 크므로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방침이다.이들의 국회진출은 마땅히 봉쇄돼야겠지만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유권자들이 덜 문제 있는 사람에게 투표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바람직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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