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실버 마술단 ‘마술램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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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졌던 밧줄이 순식간에 이어진다. 난데없는 장미꽃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요즘 마술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마술을 통해 지역사회에 환한 웃음을 전하고 싶다는 노인 마술 봉사단 ‘마술램프’를 만났다.


  “식구들이 그렇게 재밌어 할 수가 없어. 외손녀는 글쎄 ‘우리 할아버지 진짜 특이하다’고 소릴 지르더라니까”
  며칠 전 아내의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술 솜씨를 뽐냈다는 장병탑(73)씨. 페이스페인팅 기술을 배워 이미 5년 정도 봉사활동을 해 온 장씨가 이번에 선택한 재주는 마술이다. 실버 마술 봉사단 ‘마술램프’는 고양실버인력뱅크가 진행 중인 ‘6090 무지개봉사학교’프로그램의 일환.
  60세에서 90세 지역노인의 건강증진과 자원봉사 참여 활성화를 위해 마술을 포함해 동화 구연·청소·한자강의 등 봉사활동 그룹을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마술램프에는 현재 20명의 지역 노인들이 참여, 지난 5월부터 시작된 12주 과정의 교육에 참가하고 있다. 오는 8월 교육과정을 마치면 고양시의 복지시설과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마술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마술램프의 최고 연장자는 이금복(81)씨. 아침 운동 길에 만난 이웃의 권유로 교육에 참여하게 됐다는 이씨는 요즘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그는 “하루빨리 교육과정을 마치고 어린이들 앞에서 공연을 펼치고 싶다”며 “처음엔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좋아하는 손자들을 보며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유일한 부부 단원인 김종갑(74)·최정복(여·67)씨. 시에서 진행한 실버 내레이터 모델을 비롯해 노인종합복지관 식당 봉사 등 부부가 함께 봉사활동을 해 온지 어느덧 5년여가 지났다. 아내는 봉사활동을 통해 건강도 되찾았다. 최씨는 “지병인 류마티스 관절염 때문에 한때는 몸도 못 가눴다”며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아픈 것도 잊게 됐고 지금은 움직이질 않으면 되려 몸이 쑤신다”고 말했다. 늘 붙어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부부금슬이 더 좋아진 것은 당연지사다. 김씨는 “우리 부부는 이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한규성(67)·조인호(68)씨는 초등학교 교장을 지내고 은퇴했다. 오랜 세월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지내 온 이들, ‘할아버지 마술사’로 다시 한 번 아이들 앞에 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한씨는 “마술을 통해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동심을 지켜가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씨는 “요즘의 교육은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겨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아이답지 않게 자라는 경우가 많다”며 “입시와 성적에만 몰두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웃음과 여유를 찾아 준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하는 노인들의 열정은 젊은이들의 그것 못지않다. 마술수업을 담당하는 한국마술협회 일산지부 조용완(30) 실장은 “지금껏 가르쳐 본 그룹 중에 가장 모범적인 학생들”이라며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모습에 가끔은 이분들이 노인이란 걸 잊어버릴 정도”라고 말했다.

글·사진= 프리미엄 이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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