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꺼달라 요청했던 것은 비판의 촛불 아닌 폭력의 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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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경한(사진) 법무부 장관은 두 달여 동안 나라를 뒤흔들었던 촛불시위 대책을 책임진 장관 중 한 명이다. 김 장관이 촛불집회에 대한 소회를 적은 e-메일을 9일 전국 검사들과 일반 직원 등 2000여 명에게 보냈다.

6·10 이후 최대 인파가 몰린 5일의 촛불문화제를 기점으로 과격 시위가 수그러들고 7일 소폭 개각이 이뤄진 직후다. 과격 시위에 엄정 대처하다 ‘과거 공안검찰의 부활’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던 검찰 조직을 추스르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 장관은 e-메일에서 “우리 사회는 불법 시위대의 확성기 소리, 도로 점거, 쇠파이프를 동원한 폭력행위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불법·탈법으로 변질된 촛불시위의 폐해를 지적했다. 그는 “혹자는 불법집회 자제를 호소하고 법 질서를 회복하려는 우리(법무부)의 노력을 과거 공안정국의 회귀라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우리가 요청했던 것은 비판적인 이성의 촛불을 꺼달라는 것이 아니라 불법적인 ‘폭력의 촛불’을 꺼달라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국민의 인권이 침해돼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불법행동에 의해 훼손돼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 등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우리 사회의 법과 원칙이라는 것이다.

법 질서가 무너져 망해버린 사례도 들었다. 김 장관은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한번 무너진 법 질서로 인해 선진국의 문턱에서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모습을 역사에서 많이 봐 왔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우리가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법과 정의보다 힘의 논리가 앞서게 되고 급기야는 이 사회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검사와 직원들을 독려했다.

김 장관은 헌법 제1조의 의미에 대해 “헌법 제1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에 그 어떤 권력이나 그 어느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헌법은 사람이 아닌 법의 지배를 천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장관은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정부의 잘못도 인정했다. “정부도 국민과 긴밀히 소통하지 못한 부족함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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