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전철폭파 협박범의 항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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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인선 전동차를 폭파하겠다고 수차례 철도청을 협박,시민들까지공포에 떨게했던 장본인은 평범한 30대 회사원이었다.
22일 협박혐의로 구속된 이원철(李源喆.37)씨는 당초 우려와 달리 폭파능력이 전혀 없었고 회사에서도 성실하기로 정평나 있다. 그가 경찰에 붙잡힘으로써 시민들은 공포에서 벗어났고 경찰이나 철도청도 안도의 함숨을 몰아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에게만 모든 잘못을 물을 수 있을까.
李씨가 경찰에서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엔너무 많은 숙제를 남겨놓았다.
『물의를 일으킬 의도는 없었습니다.그저 파행적으로 운행되는 열차에 대해 항의하려던 것 뿐이었습니다.화가 치밀어 말을 가리지 않고 하다보니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회한에 가득찬 그의말에는 철도청을 원망하는 기색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수사경찰 조차도 『「폭파」라는 단어만 안썼어도 단순히 항의하는 소시민의 이유있는 항변으로 끝났을텐데…』라며 씁쓸해 했다.
李씨는 『전철이 늦는 것은 예사고,심지어 아침이면 역구내에 지린내가 나는 가하면 열차 내부의 청소조차 제대로 안돼있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전동차는 시민의 발이 아니라 수송 궤짝에 불과했다』고 덧붙였다.
李씨의 협박전화가 걸려온 바로 다음날 경인선 역구내에 「지연운행으로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더 깨끗하고 편안하게 모시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사과문을 게재하는등 철도청은 부산을 떨었다. 李씨가 전철의 연착 운행에 대한 불만을 폭파협박으로 토로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을 철도청이 시인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사과 대자보만 붙였을 뿐 李씨가 지적했던 어느 것 하나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수도권 전철은 여전히 제멋대로운행되고 있다.지하철 역 구내에 게시된 전철 시각표는 장식품에지나지 않는다.
전철 뿐만 아니다.우리나라 최고의 열차라는 새마을호 조차 그리 깨끗하다거나 시간을 잘 지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하지만 개선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은 새해들어 「행정은 서비스업 행위」라는 정부의 입장이 천명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터진 것이다.철도청을 비롯,관계당국은 李씨가 잡힌 것에 안도하기보다 「무엇이 평범한 시민인 그를 폭파협박범으로 만들었는가」를 깊이 생 각해보아야 한다.李씨처럼 불만을 토로하진 못했지만 시민들은 오늘도 서비스제로지대인 전철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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