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역사 세우기의 自畵像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단지 서쪽 끝에 3년전 새롭게 들어선기념관이 있다.유대인학살 기록관이라 불리는 곳이다.기념관에는 나치독일 치하에서 학살당한 6백만 유대인과 기타 수백만 희생자들의 수난사(受難史)가 생생한 기록과 함께 전시 .소개되고 있다. 건물 설계와 기록물의 전시구성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시종숙연하게 만든다.그런데 조금만 신경써 둘러보면 어린이들의 눈으로 본 당시 수난역사를 부각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나치지배아래 1백만명이상의 어린이가 희생된 데에도 부분적 연 유가 있겠지만 기념관 설립취지를 보면 그 배경은 좀더 명확해진다.
「핍박받은 이들의 비극적 역사를 통해 인간의 행동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고 상호 의존적 세계에서 책임있는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운다」.기념관 설립의 목표다.종족간 투쟁의 역사를 부각시키기보다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한 대목이 다.죽은 자의 고난을 승화(昇華)시켜 미래를 일구어나갈 이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진정한 역사세우기 노력이기도 하다.
일본과의 독도(獨島)분쟁을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대처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인 모양이다.국제사회 대부분이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하는 마당에 새삼스레 역사바로세우기 슬로건에 걸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한다.
바깥에서는 독도분쟁을 한.일간 영토다툼이라기보다 민족간 자존심 싸움으로 보고 있다.동아시아 지역내 분쟁을 논의할 때마다 서방전문가들이 민족주의를 빼지 않고 들먹이는 이유를 음미(吟味)할 필요가 있다.밖에서 말하는 민족주의란 우리식 표현으로 감정에 치우치는 국가의 행태를 지칭한다.얼룩진 과거청산을 계기로역사바로세우기 캠페인을 시작한 정부의 순수한 의도는 존중돼야 한다.그러나 정당한 노력이 정치판의 논리에 의해 왜곡(歪曲)되거나 자극적인 슬로건으로 변질되어서 는 안된다.
한국내에서는 일본비난이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내는데 가장 손쉬운 방도라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한국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노력이 국민감정을 부추겨 민족주의 성향에 호소하는 것으로바깥에 비춰져서는 곤란하다.분단해소를 민족■결합 으로 해석하는우리의 통일논리조차 의혹의 눈으로 보는 주변국이지 않은가.
역사바로세우기의 목표를 역사속에 책임있는 민주시민 양성,세계속의 성숙한 민족 만들기에 둘 때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목소리는존중받게 된다.유대인학살 기록은 민족만을 앞세우는 편협한 자세에서 벗어나 인간의 도덕성이 갖는 보편성에 주 목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길정우 본사 在美 칼럼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