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보복조치 선언 남북한 관계 험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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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을 조짐이다.
남북 쌀회담 이후의 교착국면이 현성일씨 부부등의 귀순에 이은성혜림(成蕙琳)씨 일가의 서방탈출 때문에 대결로 급선회하는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북한의 보복조치 선언(15일)을 보면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같다. 물론 그들의 협박을「서울 불바다」발언과 같은 상투성으로 볼 수도 있다.또 成씨 일행의 서울행을 저지하고 한국정부를난처한 입장에 빠뜨리려는 대남(對南)심리전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북의 대남위협을 안이하게 생각해선 곤란하다고 우려하는안보전문가들이 적지 않다.북한의 도발사례를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북측이 요인 납치나 테러,혹은 사회 혼란을 조성하기 위한 게릴라 침투 등 모든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우려는 중앙통신을 통해 나온 북측의 반응이 즉각적인데다 예상을 넘는 수위이기 때문이다.
북한이「우리의 최고지도부」라며 김정일(金正日)을 사실상 지칭한 것도 이번 사태를 피해가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그들은 「전대미문의 대죄」 운운하며 험악한 말들을 쏟아냈다.
제네바주재 북한 대표부는 또 북한군의 대남 보복 가능성을 유엔 유럽본부에 전달함으로써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김정일이 지난 93년3월12일 북핵위기와 관련,「준전시상태」를 선포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였던 것처럼 유사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북한이 『남조선이 이따위 짓을 다시한번 감행한다면 그들 자신은 물론 그 족속들까지 비참한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은 것은 한국의 지도급 인사 및 가족에 대한 테러 위협으로 간주된다.북한은 또한 한국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앞으로 남북정상회담 의지를 표명한다 해도 김정일이 응하지 않을 것이며,어떤 형태의 당국간 대화도 상당기간 회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요구해온 한국의 공식사죄를 정부가 받아들일리 만무하다.따라서 대화는 물건너가고 만 것이다.
사실 그동안 미국과 일본이 대북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남북대화를 언급해온 만큼 빠르면 4.11총선 이후,늦어도 김정일의승계절차가 마무리될 10월 이후에는 당국간 대화가 재개될 것이란 전망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결과적으로 「대화」가능성을 봉쇄했다.김일성 사망 직전의 북핵위기로 인한 긴장고조국면에서 갑자기 정상회담으로 선회한 전례는 앞으로는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북한이 김정일의 약점을 걸고드는 남측과는 대화하지 않겠다 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체제와 정권위기를 우려해 남북대화를 회피하던 북한은대남혁명전략과 통일전선전술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나 외교부 등 관계기관의 대남비방과 위협 성명을 잇따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金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의 강도를 더욱 높여갈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보복조치를 행동으로 옮길 수도있다.사태의 추이에 따라 면밀한 대응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유영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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