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과 마요네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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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15면

나는 뚝배기를 좋아한다. 물론 된장찌개는 뚝배기에 끓이지 않으면 제 맛이 안 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다. 그런데 내가 뚝배기를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씻기 편해서다. 어쩌다가 바닥에 호박이 눌어붙었을 때도 그저 수세미로 쓱 문지르면 깨끗이 닦인다. 언젠가 식당에서 뚝배기에 담긴 음식을 먹을 때 조심해야 한다는 뉴스가 방송에 나온 적이 있다.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려고 세제를 푼 물에 뚝배기를 담가 두는데, 그 세제가 뚝배기에 스며들었다가 음식에 다시 밴다는 보도였다. 뚝배기가 살아서 숨쉬는 그릇이라는 증명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쉽게 닦이는 뚝배기를 왜 세제를 푼 물에 담가 두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며칠 전에 만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호박전을 자주 부치는데 호박전을 하면서 밀가루를 담았던 접시를 닦을 때도 습관적으로 세제를 쓰게 된다고, 일부러 세제 대신 밀가루로 설거지를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밀가루가 묻은 접시까지 세제를 쓰는 자기 습관이 무섭다고.

그 친구는 열심히 반성했지만, 우리에게 저도 모르는 새 길들여져 버린 이런 습관이 어디 한둘일까. 우리 집 싱크대에는 개수대 한쪽에 주방세제 펌프가 붙어 있다. 전에는 이 펌프가 편리하다고 생각하고 푹푹 눌러 썼지만 이제는 거기에 세제를 넣어놓지 않는다. 물론 주방세제도 친환경 세제를 쓰고 있지만, 그것도 개수대 아래에 붙은 장에 넣어놓고 쓴다. 기름이 많이 묻지 않은 그릇이라면 굳이 세제를 써서 닦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세제가 있으면 습관적으로 수세미에 세제부터 묻히게 되니까.

빨래를 할 때도 세제를 정량보다 많이 넣어야 잘 빨린다고 생각하고 계량 컵이나 스푼에 가루 세제를 수북이 담아서 세탁기에 넣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친환경 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제를 정량만 지켜서 넣어도 환경에는 큰 도움이 된다. 세제를 많이 넣는다고 빨래가 더 깨끗해진다는 생각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뭐든 거품이 푹푹 일어야 깨끗하게 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기는 나도 쉽지 않았다. 음식을 하다가 남은 소금, 그릇에 묻은 마요네즈, 과일 껍질이나 야채를 썰고 남은 자투리 등을 쓰면 설거지할 때도 세제 없이 얼마든지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글을 읽고 처음에는 ‘마요네즈?’라고 반신반의했지만 이제는 거품이 너무 많이 나는 것을 다시 보게 된다. 당연히 여기던 것을 다시 보기만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


글쓴이 조동섭씨는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친환경주의자로서의 싱글남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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