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랑.이한영母子 마지막 통화내용-95년10월~96년1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한 김정일(金正日)의 전 동거녀 성혜림(成蕙琳.59)씨의 외조카 이한영(李韓永.35)씨는 어머니 성혜랑(成蕙琅.61)씨와 수십통의 서울.모스크바간 국제전화로 설득작업을 벌여 이번 탈출을 성공시켰다.지난 82년 모스크바 유학중 귀 순한 李씨는그동안 「비공개 귀순자」로 분류돼 안기부 보호를 받으며 언론에도 노출되지 않았다.李씨는 16일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월초까지 어머니와 비밀전화로 통화한내용중 공개되지 않은 마지막 통화부 분 테이프 3개를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중앙일보는 李씨와 어머니 成씨의 서울망명을 위한 국제전화 통화내용을 담은 녹음테이프를 李씨로부터 입수,그일부를 공개한다.이 테이프는 李씨가 어머니와 통화한 내용을 담은 마지막 테이프다.
成=여보세요.
李=알로(러시아 인사말),엄마.
成=별일 없지.지난번에 통화할때 너 망했다는 거,그거 얼마나무서운 거냐.
李=사업하다 망한 거요? 成=그거 얼마나 무서운 거냐.살아날수 있어? 李=그럼요.죽고 살고 문제는 아니고,내가 너무 욕심을 부려서 사업을 크게 벌렸다가 그렇게 된거예요.그냥 평범하게직장생활하고 그랬으면 되는데.
成=얘 자신없으면… 내가 그 사회를 좀 알잖니.생존경쟁이 얼마나… 그러지 말고 직장,안전한데 들어가서 조용하게 살렴.
李=그러려고 해요.정리할 것도 좀 정리하고 러시아어를 하니까.여기선 러시아하고 무역을 많이 하거든,그래서 러시아하고 무역하는 회사에 취직하려고 그래요.
李=외할머니 어디에 묻히셨어요.
成=할아버지 옆에.
李=할아버지가,거기가 어디였지?평양근교였던 것같은데.
成=평양시 용성구역 말암리야.그때 가봤지.할아버지 옆에 크게잘 했어.
李=파파(김정일)가 장례식은 잘 해주셨어요? 成=화장했으니까그렇게 해줬다고 보겠나? 李=잘해준게 아니구나.살아계실때도 서운하게 해주셨는데.통일되면 가볼수 있을텐데.
成=묘주에는 몽이(成耆日씨 아명)라고 썼다.할아버지 묘지에는몽이.혜랑이라고 썼고.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렇게 썼어.
李=할머니 나 여기 있는줄 알고 돌아가셨어요? 成=내가 말안했어.놀라실까봐.삼촌 살아계신줄은 알고….
李=엄마나 이모가 많이 괄시 받고 있나? 成=그런셈이야.누가감시가 붙었다고.
李=감시가 아니고 괄시,괄시.왜냐하면 방치코(김정일의 세번째부인 고영희)도 있고,그 아들이 제네바국제학교에 다니고,그렇게떵떵거리고 살면 상대적으로 이모나 엄마가 천시받고 사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成=그건 당연하지.다만,그대로 아예 살게 내버려두고 여행을 하겠다고 그러면 아무말도 하지 않고 눈감아 주고 그정도지 뭐.
李=돈 같은 건 제대로 보내줘요? 成=보내줄 돈이 어디 있니? 李=돈안주면 어떻게 거기서 생활을 하고 살아가? 成=원래 있던 거.
李=아,이모가 옛날에 조금씩 꼬불쳐놨던 것….그거 다 까먹으면 어떻해.
成=죽으라고 하겠니,설마? 李=그런 상태예요? 나는 그래도 대장(김정남)이 있으니까….대장이 장손이고 장남이고 그러니까 대장 봐서라도 이모한테는 함부로 안할줄 알았거든.
成=더 가혹하게 하려면 할수도 있는 처지지.그 여자(셋째부인)가 세도가 대단하니까.그래서 무관심하고 모른척 한다.
李=그러면 대장이 장손인데 후계자로 생각 안하나요? 成=아직자기 자신(김정일)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그런 문제 논의 하겠니? 李=여기서는 초대소에 갇혀있는 걸로 그렇게 났더라? 成=맞지 뭐.몰래 그러고 나와 다니지.갇혀있고….
李=대장은 그럼 자기 엄마니까,이모한테는 가끔 왔다갔다해요?成=얼마전까지는 했댔어.한 3~4년 전까지는.3년전부터는 전혀나오지 못하는구나.
李=도망갈까봐 그러는건가? 成=모르지.
李=어렸을때는 참 그렇게 귀여워하고 장차 후계자로 여기시고 그러는 것 같더니.
成=그렇게 변하더라.
李=내가 많이 망설였었어,사실.그런데 내가 지금 통화를 안하면 엄마나 이모하고 영원히 통화가 안될수도 있고 또 전화번호가혹시라도 바뀌면,그러면 연락이 전혀 끊기면 정말 언제 볼수 있을지,통화라도 할수 있을지 사실 막연하잖아요.
成=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울먹이며)내가 10년을,10년을너는 한번도 안걸었댔니?그저 어쩌다가 그게 혹시 네건가 하고….10년을 어떻게하다 그렇게 기다렸다.그런데 한번도 안했니? 李=내가 옛날 전화번호가 그대로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엄마,할머니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어? 成=할머니,건강하시고 백세까지 사신다고 그랬는데 너무 속이 상해서 뇌혈전으로 돌아가셨어. 李=속상했다는 건 정남이 문제,뭐 그런 건가? 成=그럼,아니면 더 계속 사셨을텐데.(울먹임)용기를 잃지 말아.아직 젊잖니.용기를 잃지 말아.
李=엄마 걱정마세요.나는 어려도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
成=나는 네가 참 잘됐다고 생각해.
李=평양에 있었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成=글쎄말이야,글쎄말이야.두아이가 다 거기에 갇혀있잖니? 李=두아이라니? 成=남옥이.
李=남옥이도 못나오나.
成=울타리 때문에 나오지도 못해.울타리안에서 어떻게 사니? 李=그럼 정말 둘이 갇혀있나? 成=남옥이는 옛날 우리집 호두나무집에 있어.
李=그럼 대장 옆집 거기 있고? 成=응.아이들이 갑갑해서 죽지 뭐. 李=어렵고 고생되더라도 여기가 좋아요.
成=그렇지,그래.
李=여기와서 느낀 거지만 거기 정말 잘못하고 있어.엄마도 느낄거야. 成=아휴,말할수 있니.도대체 기가 막히고 목이 메어서…그런데 10년전도 옛날이다.지금은 더해.제사때나 명절이라며 들어오라고 하면 병원에 들어갈 작정이다.피할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잖니? 李=남옥이는 그럼 거기서 어떻게 하나? 成=거기 있는한 어떻게 결정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니?어떡하든 나오도록 수를 쓰는데 그게 잘 안된다.
李=어떻게든 남옥이를 밖으로 끌어내요.
成=내가 기회를 노리는 것도 그거야.
李=여기서 사진 보니까 파파도 많이 늙으셨던데…?건강은 해요?어디 아파보이던데요? 成=좀 그렇기도 한 것 같아.하도 비밀,비밀이라서….
李=그것도 비밀이에요? 成=우리가 아니?몽땅 비밀이야.
李=옛날처럼 대사관도 편의 봐주고 그래요? 成=고작해야 비행기표나 사주는 거지,뭐.
李=대사관이나,옛날처럼 하부기관에서 달러 아부(뇌물) 안하나? 成=달러가 얼마나 귀한줄이나 아냐?알잖니,우리나라 사정이 어떻다는 걸.여유가 누구에게도 없어.그래도 걱정하지 말아.이모가 저축한 것 가지고 너끈히 살수 있어.
李=얼마나 저축했어요?몇백만달러 정도 저축했어요? 成=평양에서 먹는 것과 옷같은 것 대주니까 그걸로 살지.
李=저번에 통화한 손자 알지?비디오로 담아놨으니까 보내줄게요. 成=그걸 어떻게 여기서 보니?관료들 다 있는데.그 전화 괜찮니? 李=그쪽에서만 괜찮으면 괜찮아요.그게 제일 걱정이야.
成=여기는 까치들이 다 도청을 하잖니? 李=까치가 뭐야? 成=네가 이름붙인 거잖아,KGB말이야.까치들이 다 듣고 있는데,24시간 다 들어.그런데 러시아하고 우리(북한)가 사이가 안좋아.어떻게든지 우리 모여서 살 궁리를 하자.
李=내가 부도가 나서 감옥에 갈뻔했었는데 국가에서 다 관대하게 해결해 줬어요.
成=아,고맙구나.
李=집도 사줬었어요.내가 어떻게 사요.
成=그래,일자리 있니? 李=있죠.당국에서 좋은 직장에 취직시켜줬는데 방송국 프로듀서라고 기자 같은 거예요.
成=너 원래 글쓰는 재간 있잖니?아,수입이 좋은 그런 곳에 알선도 다 해주는구나.
李=여기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삼촌이 해외를 왔다갔다 할수 있을 정도인데요.
成=내가 글을 쓰지 않니?내가 꼭 쓰려고 하는 주제가 있잖니? 李=엄마가 글을 쓰려고? 成=이미 썼는데,여기서는 발표하기곤란해. 李=엄마가 쓴 글을 그쪽에선 발표하기 곤란하다고? 成=그래.난 그래서 그런거 건강이 허락하는한 죽기전에 완성하려고한다. 李=그럼 엄마가 들어가지 않고 그런 글을 여기서 받으면돈벌이가 되는데.
成=얼마든지 그거야 알지.그러나 내가 저쪽과 인연을 끊지 않으면 곤란하지.희망을 가지고 안전한 직장에 가서 조용히 살아라.엄마 살아있단다.엄마 그렇게 무능하지 않단다.희망을 가지고 살아라.엄마는 글을 써서 먹고 살려고 작정하고 있 어.
李=응,그래? 成=엄마는 글을 써서 먹고 살수 있다는 것 알아.내가 쓰면 세상에서 희귀한 글이 될 거야.
李=제3세계에서 엄마가 문필활동을 하면 아마 돈 많이 벌거야.엄마만의 고유한 것들이 있잖아.그동안 많이 느꼈던 것.
成=그래 내가 쓰는 것은 소설이 아니고 실제 일이야.
李=그럼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수있겠네.
成=글쎄말이야,글쎄말이야.너 희망가져라.나는 제3세계에 가서책을 낼거야.
李=그러면 남옥이를 빨리 불러내야죠.
成=그럼,빨리 불러내야지.정남이야 제 아들인데 죽이기야 하겠니?전화비 많이 나오겠다.백달러는 되겠다.
李=백달러?엄마가 그렇게 어려워? 成=너희들은 백달러가 안 크니? 李=여기서는 백달러 우습게 알아요.흔해요.
[정리=김기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