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의KISSABOOK] 가족은 가장 큰 위로, 가족은 가장 큰 번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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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아이들이 무한대의 사랑을 경험하는 최초의 파라다이스는 가정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의 상처 헤집기가 정신분석의 단골메뉴로 꼽힌다. 파고들면 어느 집이고 가족사에 그늘 없는 집은 없다. 차라리 앙숙이었다면 훌훌 털어내기 쉬우련만, 가까운 이에게 받은 상처는 회복이 더디다. 앙금이 오래 간다.

배봉기는 『명희의 그림책』(보림)에서 응달에 옹크린 한 아이의 슬픔을 이야기한다. 그 슬픔 뒤에는 해체돼 가는 가족이 원죄처럼 도사리고 있다.

삶은 애들이라고 너그럽게 봐주지 않는다. 작가 또한 아이들의 그림동화라고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쯤엔 불 환히 켜지기를 가슴 졸여보지만, 터널 속 같은 먹먹한 어둠은 끝까지 걷히지 않는다.

명희가 꿈속에서 붙들었던 곰 한 마리. 혀끝에 사르르 녹는 솜사탕처럼 찰나의 행복을 주는가 싶더니, 결국 곰은 아린 슬픔 저편으로 저벅저벅 사라져간다. 아무리 덩치 큰 곰이라도 엄마가 떠나버린 지하 셋방에서 한 권밖에 없는 그림책을 보고 또 보는 아이의 그리움과 원망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큰 숨 내쉬며 마지막 장을 덮은 독자에게 책은 준엄하게 묻는다. 명희처럼 낮동안 어른의 보살핌 없이 홀로 지내는 전국의 14만 초등생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테지마 케이자부로오의 『큰 고니의 하늘』(창비)은 한 바퀴 슬쩍 돌려 가족애의 적나라한 맨살을 보여준다. 북쪽나라로 떠나야 하는 고니 식구들은 아픈 아이 때문에 출발을 미룬다. 가족으로서 당연한 결정이다. 그렇다고 결말을 넘겨짚어선 곤란하다. 아픈 아이 때문에 온 가족이 희생했다더라, 하는 식의 쉬운 해피 엔딩을 기대했다가는 당황할 테니까.

결국 그들은 병든 아이를 두고 떠나간다. 그 비정함이 독자의 가슴을 울릴 때쯤, 그래도 차마 저버리고 갈 수 없어 가족의 이름으로 그들은 도로 돌아온다. ‘가족이기에’와 ‘가족이지만’ 사이를 오가는 번뇌와 갈등이 숨김없이 그려져 있기에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게 한다.

아이들은 무조건적인 가족의 사랑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안정된 소속감 속에서 자라나야 마땅하다. 하지만 언젠가,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에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던 가족애의 모순까지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리라.

대상 독자는 엄마 아빠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당연시하는 10세 이상의 어린이와 매일같이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다짐하는 엄마들.

임사라<동화작가> romans8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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