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어린이책] 그 머시기 … 갑도를 알랑가 모르것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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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교 네 명 머시기가 간다
김해등 글, 윤정주 그림
웅진주니어, 184쪽, 8500원, 초등 고학년

지난해 시상식을 치른 제1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수상작이다. 작가의 당선 소감 속에서 작품의 색깔이 드러난다. 서해안의 작은 섬 비금도 출신인 작가는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 섬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단다. “아따, 고것이 문핵이다냐? 그라믄 느 애빈 문핵 할애비도 하것다야. 큼큼, 으짜던지 축하한다이, 잉!”

이렇듯 밝고 속 깊은, 건강한 이야기 일곱 편을 묶어 놓은 연작동화집이다. 감칠맛 나는 남도 사투리가 읽는 재미에 한몫한다.

배경은 바닷가 작은 마을. 그곳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이 이야기의 소재다. 초등 고학년용 동화치곤 근래 보기 드물게 ‘단순한’ 설정이다. 집단 따돌림도, 폭력도, 이혼도, 사별도 없다. 아이들을 옥죄는 성적 부담도, 학원도 없다. 자연과, 놀이, 동심과 사랑만 갖고도 이렇게 갈등과 재미를 빚어낼 수 있다는 게 신선하다.

갑도 마을에는 아이들이 네 명뿐이다. 동호와 동우 형제, 명순이와 수남이가 전부다. 이들이 서로 샘내고 경쟁하고 또 도우면서 사는 이야기가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선생님의 관심을 받는 명순이가 부럽기만 한 동우. 선생님이 손을 잡고 또박또박 틀린 글자를 고쳐주는 게 좋아 일부러 받아쓰기 시험을 틀리는 아이다. 급하면 ‘머시기, 머시기’를 연발하는 어리버리한 수남이와 맏형 노릇을 하는 다부진 동호는 방학 때 놀러온 명순이 사촌 미애를 같이 좋아하면서, 연적(戀敵)이 된다.

수남이 할아버지와 동호 할아버지, 이 두 할아버지의 캐릭터도 눈여겨볼 만하다. 수남이 할아버지는 마을의 큰 어른. 동네 사람들이 모두 ‘어신’으로 떠받드는 존재다. 고기가 수남이 할아버지에게 쫀득쫀득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반면 동호 할아버지는 수남이 할아버지한테 늘 주눅 들어 살면서 사사건건 수남이 할아버지와 대결을 벌인다.

할아버지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도 여럿이다. 네 번째 에피소드 ‘독살을 알랑가 모르것소이?’는 동호 할아버지가 벌인 일이다. 갑도가 정보화 마을로 선정돼 마을회관에 컴퓨터가 들어왔다. 수남이 할아버지는 컴퓨터로 할 줄 아는 게 고스톱밖에 없지만, 동호 할아버지는 마을 홈페이지 ‘갑도魚사랑’에 글을 올릴 줄도 안다. 동호를 달달 볶아 컴퓨터를 배운 덕이다. 동호 할아버지가 ‘독살을 알랑가 모르것소이?’란 제목으로 올린 글이 ‘대박’이 났다.

‘독살’은 바닷가에 돌로 성처럼 쌓아 만든 물웅덩이다. 밀물 때 독살에서 놀던 물고기들은 썰물 때면 꼼짝없이 독살 안에 갇히고 만다. 갑도만의 물고기 잡는 비법이다. 늘어나는 조회 수에 신이 난 동호 할아버지. 이제 독살은 다 망가지고 흔적만 남았건만, 할아버지는 지금도 성업인 양 과장해서 글을 올렸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동호 할아버지의 글을 읽은 도시 아이들이 독살 체험을 하겠다며 전화를 바리바리 해온 것이다. 마을엔 비상이 걸리고, 마침내 마을사람들은 힘을 합쳐 독살 복구에 나선다.

여섯 번째 이야기 ‘울음통대’에서는 수남이 할아버지가 실력을 발휘한다. 바닷속 고기의 움직임을 모니터로 볼 수 있다는 첨단장비 ‘어군탐지기’보다 수남이 할아버지의 울음통대가 더 신통했다. 대나무 통 뚫린 구멍으로 바다 속 고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기잡이에 따라나선 동호에게 수남이 할아버지는 ‘산만큼 큰 거인’처럼 보였다.

이야기 속 할아버지들은 근엄한 잔소리쟁이도, 인자하기만 한 성인군자도, 또 할 일 없어 외로워하는 천덕꾸러기도 아니다. 그냥 생활인이다. 할아버지 세대와 손자 세대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이 참 푸근하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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