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전문대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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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朱모 시인이 50년대 후반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품었던 간절한소망은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어엿한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그러나 두차례 도전에 실패한 뒤 그는 「하는 수 없이」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응시해 합격했다.그래서 그 무렵 『서라벌예대에 들어갈 수 없다면 「차라리」 서울대에 가라』는 우스갯소리가 한동안 유행했다.
朱시인은 그뒤 60년대 중반 문예지의 추천을 받아 데뷔해 중견시인으로 활동했지만 2년제 초급대학이었던 당시 서라벌예대의 문예창작과는 「문인공장」으로 불리면서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겐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현장으로 꼽혔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그 과(科) 출신의 절반이상이 시인으로,소설가로,평론가로 활동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그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던 소설가 김동리(金東里)의회고에 따르면 가령 58년에 입학한 42명 가운데 무려 39명이 문단에 진출했다니 그 「위력」을 짐작할 만 하다.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연극.영화.방송.미술.사진.공예등 예술의 모든 분야에 걸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냈음을 감안한다면 이 학교의 공적은 간단하게 평가될 수 없다.중견이상 원로급 문인교수들이 문학을 학문으로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창작체험을 통해문학적 분위기와 감각을 익히게 한 것이 주효했고,이같은 교수법은 다른 과에도 비슷하게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4년제 대학과 2년제 전문대의 문예창작과가 공존하는 지금 역시 문단 진출률에서 전문대 쪽이 월등히 앞서는 것도 교수법과 학교 분위기의 차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예술분야만이 아니다.정규대학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학과가 많이 생기고,그런 학과 출신들의 취업률이 정규대졸자를 훨씬 앞지르면서 최근 2~3년새 전문대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더욱 주목할만한 현상은 4년제 대졸자나 전문대 졸업자들의 전문대 특수학과 재지망이다.엊그제 마감한 어느 전문대의 유아교육과엔 40명 정원에 5천2백여명이 지원하는 기록적인 경쟁률을 보였고,10일 마감된 전문대 원서접수 결과 지원자 첫 1백만명돌파의 기록을 세웠다.「명분보다 실리」를 좇는 바람직한 현상인데 이젠 전문대의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교육정책이 뒷받침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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