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홍신자의 "네개의 벽"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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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좋은 공연에는 관객이 몰린다.」 아주 상식적인 문구지만 무용공연에서만은 늘 이 상식이 비켜가곤 했다.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연일 강추위가 사람들을 움츠리게 하는 날씨인데도 객석을 꽉 채운 보기드문 무대였다.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홍신자의 『네개의 벽』공연이 그 현장이다.공연기간 사흘내내 3백여석의 좌석이 모두 채워졌다.공연이 열리기 며칠 전부터 이미 1,2회 공연은 전석 매진되기까지 했다.
세계무대에서 활동해온 「홍신자」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와 지난93년 귀국한 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홍씨의 대표적인 독무(獨舞)작품이라는 점이 사람들을 객석으로 불러들였다.또 무용곡을 많이 작곡한 존 케이지의 전곡이 국내무대에서 첫선을 보인다는 것도 관객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였다.
이같은 관객들의 열의에 홍신자는 그 이름에 걸맞은 춤으로 보답했다. 한점 빛도 없는 암흑 속에서 춤은 시작된다.무대에 한줄기 빛이 스며들면 라마 승복같은 주황빛의 옷을 입은 한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이 여인은 피아노음악 반주에 맞춰 서서히 몸을 움직인다.우리가 기대하는 격렬한 발동작 대신 어 찌보면 잠시 말을 멈추고 다른 배우의 대사를 듣고 있는 연극배우의얼굴같은,혹은 소리없이 절규하는 벙어리의 고뇌같기도 한 표정과귀를 감싸는 느린 손동작만으로 관객들을 맞는다.
춤이 진행돼도 이처럼 절제된 동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때로는 몸을 수그린채 무대를 가로지르고 때로는 차가운 마룻바닥에 드러눕는 격정적인 동작을 펼쳐보였지만 대개는 명상적인 느린몸짓으로, 홍씨는 사람들 사이를 사방에서 가로막 고있는 네개의벽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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