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벨기에의 흰 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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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황학주(1954~) '벨기에의 흰 달' 부분

정거장마다
지붕 위에서 사라지는
달이 기다리고
어딜 가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은
달에 가있다
달이 물방울처럼 아름다운
브뤼셀은 가까워 오는가
정말 生에 가까운 것이 오려나

당신은 참 좋은 사람예요
갑자기 열차 창 쪽에서
선이 바스러진 달이 말한다
죄를 사용했던 사랑만을 가지고 있으니(후략)



봄 내내 냉이꽃밭을 들여다보고 있다. 냉이꽃밭이라고 썼지만 봄의 풀밭은 다 냉이꽃밭이다. 길 걷다가, 강의실 언덕을 오르다가, 서점 가는 길에, 이 작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본다. 아니, 바람의 느낌은 없는데 냉이꽃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아 바람의 존재를 안다. 자신의 존재를 가장 섬세하고 따뜻하게 느끼는 누군가가 눈앞에 걸어온다면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냉이꽃밭에서는 하루 종일 바람들이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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