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엄마, 나 놀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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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한테 손등 물려 빨개진 자리./거기다 반창고를 찰싹 붙였다./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손을 들어 쓱 본다./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거울을 본다./반창고를 붙인 내 손이 쓱 보인다./그렇게 멋있수 없다./…/휙휙휙 달리는데 사람들이 내 손만 본다./강아지가 내 손을 보고는/한 걸음에 냉큼 도망간다./…/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반창고 붙인 내 손등이.’(‘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에게 일회용 반창고는 멋을 내는 소품이 된다. 멀쩡한 손가락에 공연히 감아보기도 하고, 약간 긁힌 자국에도 붙였다 뗐다 한다. 어린이들의 이런 천진한 마음과 행동을 동시작가 권영상(한국동시문학회 부회장)시인이 새 시집 『실 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김은주 그림, 국민서관, 80쪽, 7000원)에 담았다.

‘솔직한 동심을 그대로 표현한 자연스러움이 좋고, 교훈적이지 않아서 좋고, 진부하거나 지루한 표현이 없어 좋다’고 쓴 이해인 수녀의 추천사처럼 시집은 놀고 싶고, 학원가기 싫어하는 보통 어린이들을 대변한다.

‘…/종태야! 나와 놀자!/자전거 타고 놀자!/…/“넌 학원도 안 가냐!”/영표 엄마가 냅다 소리친다/…’(‘뭐 하며 혼자 놀지’)
‘학원에 꼭 가야 하나요./…/오늘 학원 문 닫아 줬으면,/감기 좀 걸려 줬으면 배 좀 아파 줬으면,/그 생각만 해요.’(‘미안해요 엄마’)

권씨는 전작 『월화수목금요일별요일』과 『신발코 속에는 새앙쥐가 산다』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린이의 눈과 마음에만 보이는 발랄한 상상의 세계를 펼쳐보이기도 한다. ‘눈사람과 아기’에서 눈사람이 아기에게 “느네집 따듯하니?”라고 묻고, ‘호박 밭의 생쥐’에서 호박이 자꾸 자라나자 생쥐가 “정말 비좁아 못 살겠네!”라고 외치며 이삿짐을 꾸리는 모습처럼.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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