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외국인들 줄줄이 짐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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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 이라크 군중이 9일 바그다드 알히크마 사원에서 열린 예배 도중 강경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 부자의 사진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바그다드 AP=연합]

▶ 미 해병대원들이 9일 이라크 저항세력과 전면전을 펼치고 있는 팔루자 외곽에서 박격포를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팔루자 AP=연합]

이라크 주재 외국인들의 '탈출'이 급증하고 있다. 전국으로 확산하는 이라크 시아파 봉기와 수니파의 저항으로 '제2의 전쟁론'까지 나오고 바그다드 함락 1주년인 9일과 시아파 성일인 10일을 기해 최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최근 수일간 외국인 민간인들에 대한 저항세력의 납치가 급증한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점령군의 강력한 보복공격이 진행되면서 수세에 몰린 무장단체들이 외국인들을 납치해 인간방패로 이용하거나 인질로 붙잡아 정치적 협상을 벌일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바그다드의 한국 공관과 관계자들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셰러턴 등 외국인들이 주로 투숙하는 바그다드의 호텔들은 최근 울상이라고 한다. 체크아웃하겠다는 손님이 늘어서다. 기자, 정부 파견 공무원 등 '있어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짐을 싸고 있기 때문이다.

GMC 국경택시 주차장과 사무실에는 최근 외국인들이 북적거린다. 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육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항공편은 상당 시간 기다려야 한다. 현재 60인승 소형 여객기가 하루 두편만 운항되고 있어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다.

KOTRA 바그다드 김규식 관장은 바그다드에 머물고 있는 중소기업 한국인 출장자들도 8일 국경택시 사무실을 찾았다고 전해주었다. 가장 빠른 길인 요르단을 통한 출국을 위해서다. 그러나 요르단.이라크인 기사들 모두 "1만달러를 줘도 안 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옆에 서있던 한 캐나다인은 할 수 없이 다른 북쪽 '탈출로'를 택했다. 그동안 외국인 출입로였던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서쪽 요르단과 남쪽 쿠웨이트가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남쪽에서는 과격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 휘하의 마흐디(軍)가 주도하는 시아파 봉기로 고속도로 주변 3개 도시가 장악됐다. 외국 민간인들에게 가장 선호됐던 요르단 국경도 미군의 대규모 군사작전과 강력하게 저항하는 수니파 과격세력들에 의해 폐쇄됐다.

남은 것은 북쪽으로의 '탈출로'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바그다드 정북쪽에 위치한 모술을 통한 이동은 피하고 있다. 이곳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발라다.사마르라.키르쿠크 등 수니파 삼각지역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인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쿠르드지역에 위치한 아르빌을 경유하는 북쪽을 통해 탈출하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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