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거리 시위에 일그러진 ‘한국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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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요즘 같아서는 한국보다 중국이 살기 좋아 보인다.”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에 출장온 한국인 지인이 대뜸 이렇게 푸념했다. 1년6개월째 베이징에 살면서 탁한 공기, 돌가루 섞인 수돗물, 불안한 먹거리, 비싼 교육비에 불만이 쌓인 기자 입장에선 그의 말을 선뜻 수긍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2개월가량 베이징에 전해진 한국 뉴스를 곰곰이 되돌아보니 그의 말 속에는 뼈가 담겨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한국과 중국은 최근 들어 공교롭게도 안전 문제에 국가적 관심과 역량이 집중되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안전 문제, 중국은 올림픽 안전이 최대 관심사다.

다음달 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은 요즘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할 정도로 안전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무장경찰이 동원돼 강도 높은 테러 예방 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지하철에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음료수를 들고 타기조차 불편하다. 국내선 항공기를 탈 때는 신발까지 벗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은 “불편하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이니 수긍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먹거리 안전을 위해 2개월째 격렬한 길거리 시위를 벌이는 한국 사회를 중국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일 오전 불타는 한국의 경찰 버스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사진을 크게 게재했다. 이 사진은 “한국의 쇠고기 시위가 외국인 투자자를 놀라게 한다”는 기사와 함께 베이징의 주요 신문에도 실렸다.

사진을 본 한 베이징 시민은 “식품 안전을 강조하는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과격 시위로 흐르는 것을 보면서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쇠고기 사태를 취재해 온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의 한 기자는 “화염병과 각목이 난무했던 1980년대 학생운동 시대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또 “국산품을 애용하는 한국의 독특한 민족주의가 자칫 글로벌 시대에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로 흘러 한국의 국익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신경보(新京報)는 최근 쇠고기 사태를 집중 보도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20년간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다”고 의미심장하게 표현했다. 지금 이웃나라 중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자화상은 이처럼 상당 부분 일그러져 있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