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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 '침팬지 세계' 보는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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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 명했을 만큼 정치는 인간의 전유물로만 생각돼 왔다. 그러나 이제 학자들은 침팬지.돌고래.사자.늑대 등 무리를 이루어 사는 수많은 사회적 동물의 세계 속에도 정치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특히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발은 '정치하는 침팬지(Chimpanzee Politics)'를 통해 침팬지들의 정치 양상이 우리와 놀랄 만큼 흡사하다고 밝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미국 전 하원의장 뉴트 깅그리치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책을 미하원 의원들을 통제하는 데 참고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사회성이 강한 침팬지는 제 아무리 강한 수컷이라 해도 지지 세력 없이 혼자서는 우두머리 자리를 획득할 수도, 유지할 수도 없으며 우두머리가 된 뒤에도 항상 경쟁 세력들의 잠재력을 살피며 권력 중개자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복잡한 게임을 하며 살아간다.

1970년대 말 드발이 연구한 침팬지 집단에서는 짧은 기간 두 번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최초의 우두머리 수컷 예로엔은 암컷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서열 2위였던 루이트와 암컷들보다도 낮은 서열의 니키가 연합작전을 펼치면서 예로엔 정권은 무너지고 말았다.

루이트가 예로엔을 위협하기 시작하면 루이트의 후광을 업은 니키는 암컷 우두머리를 공격했는데, 그러면 모든 암컷이 니키를 물리치는 데 힘을 합쳐야 하므로 아무도 예로엔을 도우러 갈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루이트는 예로엔의 지지세력인 암컷들과 예로엔의 교류를 차단해 예로엔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은 물론, 막상 자기 자신은 암컷들에게 다정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점차 그들을 자신의 지지자로 포섭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 연합작전의 성공은 보잘것없는 존재였던 니키에게도 큰 변화를 주었다. 암컷들은 물론이요, 한때 절대자였던 예로엔까지 밀어제치고 전체 서열 2위로 등극한 것이다.

새로운 우두머리가 된 루이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고히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 간에 발생하는 싸움을 평화적으로 중재하고, 약자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암컷과의 강한 연대를 통해 더 많은 지지자를 얻는 것은 물론 다른 수컷들이 권력 중심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방법이기도 했다. 결국 많은 암컷의 지지를 얻게 된 루이트가 명실상부한 우두머리가 된 듯 했으나, 니키는 서열 2위로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니키는 자신의 지위를 끌어올려 준 루이트를 배신하고 넘버 3로 전락해 버린 예로엔과 새롭게 연맹을 맺은 뒤 니키 정권을 수립했다.

엎치락 뒤치락 밥그릇 싸움에 급급해 보이는 침팬지의 정치세계. 왠지 너무 친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정치의 본질은 권력을 형성하고 쟁취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국가 및 사회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꾀하는 데 있다. 탄핵 가결부터 총선을 얼마 앞둔 현 시점까지 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럽다. 정치인들은 정직하고 성실한 나라의 일꾼이 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다지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김소희 동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