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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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소장의 동생? 그럼 시동생이 애소의 상대란 말인가.
뜻밖이었다.
아리영은 그제서야 지난 초여름에 시동생이 농장집에 들른 것을기억해냈다.일본지사로 전근가게 됐다며 사나흘 다녀간 적이 있었다.잠자리는 안채에 마련해 주었고 여러 날 있었던 것도 아닌데언제 애소와 얼린 것일까.
그러고 보니 그녀가 갑작스레 일본말 공부를 시작하게 된 연유도 알만했다.사정도 모르고 아버지는 그런 애소가 대견하기만 해서 일본말 요리책을 사주었을 것이다.이 사람 저 사람 의심하며헤집고 다닌 자신이 천박스레 뉘우쳐졌다.
『시동생인가봐요.』 아리영의 귀띔에 아버지는 시름에서 크게 놓여난 듯한 표정을 보였다.
『이서방과 상의를 해봐야겠군.』 『하루 빨리 결혼시키는 것이좋겠어요.』 아리영은 올 안에 식을 올려야 여러모로 민망치 않을 것이라 서둘렀다.
당장 남편에게 알렸다.이혼하고나서 오히려 더 자주 전화하게 되는 꼴이 야릇했으나 체면에 구애되고 있을 처지가 못되었다.
『으음….』 남편은 떫은 소리를 흘렸다.
「나쁜 자식」이라 욕하고 싶은 것인지,「못난 녀석」이라 탓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어떻든 저질러진 일은 수습해야 했다. 『도쿄에 전화해서 한번 다녀가라 하셔요.』 아리영의 독촉에도 남편은 얼른 응하지 않았다.
『그 녀석이 오란다고 얼른 뛰어오겠어?』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지 않음?』 아리영은 소리를 높였다.
『그러지말고 당신이 일본을 다녀오면 어떻소?』 『제가요?』 『가서 설득해주구려.』 어안이 벙벙했다.일 저지른 장본인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도 시원치 않은 것을 누구더러 뭘 설득하란 말인가. 『그 놈은 당신에겐 고분고분하지 않소.당신이 직접 만나 얘기하면 응할지 몰라도 내가 전화를 불쑥 해봐야 다니러 올놈이 아니오.』 울화가 치밀었다.이것이 줄다리기할 일인가.
『이서방 말에도 일리가 있어.네가 가서 시동생을 만나 얘기해좋게 처리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구나.』 해괴한 일이다.미혼남녀가 상관하여 아이를 가졌으면 당연히 결혼하는 것이 순리인데남편이나 아버지는 시동생이 그에 응하지 않으리라는 전제를 깔고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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