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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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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슬람은 622년을 원년(元年)으로 삼는다. 예언자 마호메트가 고향 메카를 떠나 북쪽 사막의 오아시스 메디나로 옮겨간 해다. 이 사건이 헤지라, 즉 '출발'이다. 새 출발의 선언은 '메디나 헌장'이다. '새로운 공동체 내 세력들 사이에서 원만한 합의를 보지 못하는 정책들은 신과 마호메트에게 맡겨야 한다'는 내용이다. 예언자는 메디나에 형성된 공동체의 종교지도자인 동시에 정치.군사적 전권을 행사하는 신정(神政) 일체형 지도자가 됐다.

마호메트와 메디나의 인연은 궁즉통(窮卽通) 같다. 예언자는 마흔살이 되던 해에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계시를 받고 코란(이슬람 경전)을 암송했다. 예언자의 유일신(알라) 사상은 당시 메카에 살던 유대인.기독교인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 그래서 예언자는 아브라함의 장남 이스마엘의 자손임을 천명하고 종말과 구원을 예언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교리는 당시 다신교가 지배적인 메카에서 이단으로 몰려 예언자는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메디나는 당시 유대인과 아랍인 부족들이 뒤섞여 살던 곳이다.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자 주민들은 공동체를 이끌어 줄 지도자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상호 불신하던 분파들로부터 독립된 제3의 중재자로 마호메트가 초빙됐다. 예언자는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집단을 이끌 강력한 통솔장치로 '메디나 헌장'을 채택했다. 메디나의 아랍민족들은 모두 무슬림이 됐고,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들은 떠났다. 메디나는 완벽한 이슬람 공동체가 됐고 예언자는 성속(聖俗)을 아우르는 지도자가 됐다. 무슬림의 이상향이다.

헌장의 정신은 무슬림의 첫번째 의무인 신앙고백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고, 마호메트는 알라의 사도다"라고 외치면 무슬림으로 인정받는다. 마호메트 사후 무슬림들은 예언자가 완성한 율법에 따른 신정 국가를 꿈꿔 왔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말로 세속(로마)의 권력과 선을 그은 예수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최근 이라크의 과격파 종교지도자 알사드르가 신정 국가 건설을 외침으로써 새로운 전선을 열 수 있었던 힘이다. 기독교 국가 미국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악몽이다. 전쟁이 문명 충돌의 양상을 더하며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오병상 런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