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요일 <4> 야생화 사진전 여는 조용경 포스코건설 부사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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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27면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포스코건설 송도사업본부. 160만 평 바다를 메워 새 도시를 짓는 대역사(大役事)의 현장답게 대형 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바쁘게 움직인다. 이 프로젝트의 총괄책임자는 조용경(58·사진) 포스코건설 부사장. 그의 집무실에 들어서니 잔잔한 야생화 향기가 손님을 맞는다. 벽에 걸린 액자며 달력, 심지어 컴퓨터 모니터에서도 ‘구름체’ ‘털진달래’ ‘설앵초’ 같은 이름도 생소한 야생화 사진들이 다소곳이 진(陣)을 치고 있다. 모두 조 부사장이 전국 곳곳을 누비면서 찾아낸 보물이다.

“절벽 위에 고개 든 동강할미꽃 보면 저절로 용기 솟아”

조 부사장은 알아주는 야생화 사진가다. 주말이면 으레 아내 오선희(55)씨와 더불어 카메라와 도시락이 들어있는 봇짐을 메고 전국을 누빈다. 벌써 8년째다. 장마철인 지난주에도 강원도 정선에 있는 가리왕산 이끼계곡에 다녀왔단다. 조 부사장은 “아주 고약한 진드기를 만났다”며 붉게 상처 자국이 남은 오른쪽 팔뚝을 보여주는데, 마치 훈장을 보여주듯 의기양양하다.

조 부사장 부부는 30일부터 7월 3일까지 인천 문화예술회관에서 ‘꽃 그리고 새’라는 주제로 야생화 사진전을 연다. 2006년에 이은 두 번째 전시회다. 조 부사장은 꽃과 새,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공감하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그가 야생화 사진과 인연을 맺은 것은 순전히 가족 덕분이다. “2001년 일본 출장을 갔는데 아이가 디지털카메라를 사다 달라고 하더군요. 디카 설명서를 읽어보니 더없이 똑똑한 장난감인 거예요. 하나 더 사와서 그때부터 꽃을 찍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야생화 키우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당연히 꽃이 눈에 들어왔지요.” 인터넷 동호회 ‘들꽃마을’(www.flowervill.net)에 가입하면서 그의 주말은 온통 야생화로 채워졌다. 조 부사장은 “지금까지 230여 종의 야생화 사진을 찍었다”며 “300종을 채우면 거기에 얽힌 사연을 더해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껏 찍은 야생화마다 특별한 사연이 있을 터. 그래도 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얼마 전 결혼한 아들 부부에게 해국(海菊) 얘기를 들려줬다”며 운을 뗐다. “바닷가 바위틈 한 줌 흙 위에서 파도를 맞으면서 해국은 싹을 틔웁니다. 뜨거운 여름 햇볕을 이기고 꽃대를 올리지요. 그런 다음 피어난 해국 꽃은 ‘환장하게’ 아름답습니다. 해국은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지 않고 역경 속에서 꽃을 피우죠.”

최근 찍은 야생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자 그는 자신의 방 가운데 놓인 할미꽃을 가리킨다. 자세히 보니 여느 할미꽃과 달리 줄기는 짧으면서 꽃대가 빳빳이 고개를 세우고 있다. “강원도 영월 동강에서만 자라는 ‘동강할미꽃’입니다. 깎아지른 석회암 바위틈에서 찾았는데 특이하게도 줄기를 꼿꼿이 세운 채 꽃을 피운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동강할미꽃 생김새가 조 부사장과 닮았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은행·호남석유화학을 거쳐 1988년 포항제철(현 포스코)로 자리를 옮겼다. 박태준(현 포스코 명예회장) 회장 비서로 재직하던 그는 박 회장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발을 담그게 됐다. 포스코와 끊어졌던 인연은 99년 포스코건설에 입사하면서 다시 이어졌다.

그런데 이때부터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분당 파크뷰를 시작으로 서울 건국대 앞 스타시티, 동탄 메트로폴리스 등 그가 손대는 사업마다 투서가 쏟아졌고 검찰 조사를 받은 것만 20차례가 넘는다.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는 “승부를 가린다면 끝을 내는 체질이라 검찰까지 불려간 일이 많았다”고 했지만 마음의 상처도 심하게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나중엔 특수부 검사가 “같은 업계 사람인데 적당히 타협하는 게 어떠냐”고 훈수를 했다고 한다. 이때 그는 “타협하고 지내면 담합한다고 그럴 거 아니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반듯이 줄기를 세워 꽃을 피운 동강할미꽃이 그에겐 큰 위안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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