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KBS TV 카메라맨 이거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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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절벽위에서 몸에 밧줄을 묶을 때는 정말 줄을 벗어던지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KBS 카메라맨 이거종(44)씨.지난해 11월초 네팔 마차푸차레산 절벽 촬영때를 생각하면 그는 지금도아찔하다.밧줄에 매달려 1백 암벽 중간의 벌집을 카메라에 담았다.란드룽 마을 사람이 꿀따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다.방송용 카메라로 이런 높이의 절벽촬영은 세계 최초라는게 KBS측 설명이다. 이씨는 21일 방송되는 KBS 『세계의 명산』 제1탄 「히말라야,신들의 성지」팀 일원으로 지난해 11월1일부터 12월15일까지 히말라야 일대를 누볐다.
그는 산악경험이 없다.절벽장면촬영은 따라간 전문산악인이 맡게돼있었다.하지만 18년 카메라맨의 「프로의식」이 이를 용납하지않았다. 『귀국한 뒤 다른 사람이 찍은 것을 동료들이 「멋있다」고 감탄할 생각을 하니 샘이 나서 못견디겠더군요.』 절벽촬영이틀전부터 이씨는 『내가 찍겠다』고 막무가내로 우겼다.
촬영 하루전 이씨는 높이 20 절벽에서의 연습을 거뜬히 해냈다. 『연습시켰던 산악인이 그러더군요.겁먹고 포기하길 바랐다고.』 경비행기촬영.헬기촬영등으로 고소공포증에는 어지간히 면역이된 이씨지만 막상 절벽위에 서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옆에서는 꿀을 따러 내려갈 란드룽 마을 사람이 열심히 밧줄사다리에 입을 맞추며 기도를 올렸다.하지만 취재팀중 가장 고참인이씨는 겁먹은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한술 더떠 마을 노인은 내려가기 직전 『지금까지 꿀을 따다 7명이 죽었다』고 까지 말했다.
절벽 위쪽이 아래쪽보다 훨씬 튀어나온 덕택(?)에 3쯤 내려가자 아무도 이씨를 볼 수 없었다.그제서야 이씨는 란드룽 사람들이 하던 대로 밧줄에 연신 입을 맞추며 기도했다.
갑자기 밧줄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란드룽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카메라를 들어올렸다.순간 공포는 씻은듯이 사라졌다.
『당시는 그런 생각도 못했어요.나중에 생각해보니 두려움이 사라졌던 걸 기억해 낸거죠.』 이번에는 엄지손가락만한 벌들이 쏘아대기 시작했다.몸 이곳 저곳에서 강한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그러나 통증도 잠시 뿐.이씨에게는 카메라렌즈와 그의 눈을 통해 전달되는 장면만이 남았다.보다 좋은 영상을 잡으려 몸을 비틀 때면 밧줄이 흔들렸다.그래도 두려움보다 화면이흔들리는 것에 짜증이 날 뿐이었다.
조금씩 내려가며 촬영을 마쳤다.지상 30쯤 될까.왈칵 겁이 났지만 잠시후 든든한 대지가 두 발에 느껴졌다.
반쯤 저승에 발을 내디뎠다고 회상하는 이씨.안도의 한숨보다 먼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보다 좋은 장면을 찍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일이라도 하겠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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