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맞춤치료와 광우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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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금까지 흔하게 쓰이는 약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효과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항고혈압제나 당뇨병 치료제는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비슷한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암은 같은 폐암이라도 사람마다 형질이 다르다. 또 같은 사람에게서도 원발암과 전이암의 성질이 다르며, 재발한 암인 경우 과거의 암과 형질이 다르다. 때문에 그때마다 개개인 암세포의 특성에 맞는 맞춤치료가 필요함이 최근 알려졌다.

맞춤치료를 위해서는 각각의 암에서만 발현하는 특이한 표적(바이오마커)을 찾고, 이에 대한 추적체(크루즈 미사일)를 만들어 여기에 방사성동위원소·발광물질·MRI 조영제 등을 표지해 인체에 주입한 후 양전자단층촬영(PET)·내시경·MRI 등을 촬영, 각각의 암 조직에 잘 붙는지 확인한다. 이후 다량의 같은 추적체에 다량의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여 주사하면 암 조직에 집중적으로 붙어 제거하게 되어 맞춤치료가 완성된다.

맞춤치료의 한 예를 소개하면, 치료제로 이미 상품화된 유방암에 잘 붙는 항체 ‘허셉틴’에 방사성동위원소와 나노발광물질을 표지해 진단하는 기술이 개발 중이다. 허셉틴에 나노형광물질인 양자점(quantum dots)을 표지하면 생체 내에서 유방암이 발광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어, 고가의 허셉틴 치료가 잘 듣는지 미리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광학적 기술은 인체의 표면에서는 관찰할 수 있으나 장기 속까지는 투과되지 않아 볼 수가 없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허셉틴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부착해 PET 장비로 3차원 전신 촬영하는 핵의학 기술이다. 나노물질은 추적용 항체와 형광물질·방사성동위원소를 함께 운반할 수 있다. 따라서 광학적으로는 내시경 및 복강경으로 암의 위치 및 확산 정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내시경 수술이나 복강경 수술의 범위를 알려준다. 또한 핵의학적으로는 전신 PET 영상으로 암의 범위 및 치료제의 전달을 확인하고 치료효과를 추적하게 된다.

이러한 핵의학(광학) 암추적 나노복합체는 종양을 진단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지만 항암제나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부착하면 부작용 없는 개개인의 맞춤형 치료로 연결된다. 또한 이 기술은 새로 개발된 신약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를 알 수 있어 맞춤형 바이오신약 개발에도 사용된다.

암 치료가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저산소 상태에 있는 암세포 치료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저산소 상태에 있는 암 부위를 PET로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이 3차원 PET 영상은 첨단기술의 세기조절방사선치료기(IMRT)에 전달돼 저산소 상태 부위의 암에 더 강한 세기의 ‘방사선 맞춤치료’도 가능하게 한다. 암 이외에도 약에 듣지 않는 난치성 기생충 및 세균성 질환에도 이와 같은 원리의 맞춤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즉 기생충에 치명적인 항체를 만들어 이들 조직을 파괴하는 것이다.

최근 광우병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광우병은 문제가 되는 지역의 쇠고기를 먹는다 하더라도 인간이 걸릴 확률은 극히 낮지만 일반 전염병과 달리 마땅한 치료나 예방이 어렵기 때문에 괴담 수준의 공포를 야기하고 있다. 인간광우병은 ‘프리온’이라는 단백질 입자에 감염된 후 변형된 단백질 입자가 인체 내에서 뇌신경세포에 손상을 주어 발병한다. 그런데 이 단백질 입자는 생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개발한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가 모두 무용지물이다. 만약에 프리온 단백질 입자에 대한 강력한 항체와 프리온만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를 나노공명체에 결합시켜 ‘프리온 추적 나노복합체’를 만든다면 광우병의 조기진단 및 치료도 가능하지 않을까?

21세기 첨단 의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광우병 파동은 새로운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암의 증가나 에이즈·광우병 등 신종 질환의 출현은 인간의 생태계 파괴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보복이다. 하지만 핵의학·항체 등 나노복합체를 이용한 맞춤치료의 발달로 암이나 모든 불치성 혹은 난치성 질환도 치료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김종순 한국원자력의학원장